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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Jan 16. 2016

비엔나 커피의 정체

 우리집에선 여전히 믹스커피에 아이스크림 한 수저 넣은 것이 비엔나커피

일러스트@황인정


작은 컵에다가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떠 넣고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얹는다.
이렇게 먹는 걸 "아포가또'라고 한다. 차가운 아이스크림 위에 굳이 뜨거운 커피를 붓는다.  

별로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디저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매력적이다.  

뭐 디저트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에스프레소 기계에는 작은 컵 모양과 큰 컵 모양이 그려진 버튼 두 개가 있는데,  

작은 컵 모양을 누르면 한 덩이의 아이스크림이 반 쯤 잠길만큼 담긴다.

순식간에 녹을 줄 알았던 아이스크림은 의외로 녹지 않고 스푼으로 뜨일만큼 고체 상태를 잘 유지하는데,  

먹을 때마다 그 부분에 놀라곤 한다. 금방 녹아버리겠지 하고 이쪽은 마음을 먹고 준비하고 있는데 녹지를 않으니까, 마치 면접날짜가 조금 씩 밀릴때마다 반가우면서도 초조한, 그런 기분의 긴장감을 가지고 먹게 된다.
 

식사 후 케이크는 부담스럽고, 커피만 마시기에는 아쉬울 때 주문하곤 한다.   

아이스크림이 닿는 혀는 차가운데, 흘러들어온 따듯한 커피가 입안을 살짝 한바퀴 돈다.  

온천 안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동시에 눈이 내리는 노천이라 머리는 시원한, 그런 신비로운 맛이다.  

어느 유행어처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요물이다.  

오늘은 이 아포가토를 맥도널드에서 먹었다.  

5-6년 전만해도 아포카또를 주문하면 순간적으로 잠깐 시선이 집중이 되는 걸 느꼈다.  익숙한 라떼와 마끼아또의 주문 후에 아포가또를 고르면 그건 또 뭐야, 라는 듯한 잠깐의 정적같은 것이다.  종종 "이얼~그런것도 알어" 라는 부끄러운 말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 시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맥도널드의 메뉴 중 하나다. 그만큼 대중화된 메뉴가 되었다는 것이겠지.


어떤 음식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다가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아서 갑자기 패스트푸드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 여기저기서 눈에 띄게 되면, 왠지 나랑 친했던 어떤 친구가 갑자기 유명해져서 이 친구도 알고 저 친구도 알고

그러다가 어느날은 모르는 사람이 와서 그 친구도 모르냐고 나에게 묻는 일까지 생기는 그런 상황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는데, 어쨌든 맥도널드의 아포가토는 오레오쿠키도 들어있고 소프트아이스크림위에 커피를 얹은 것으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는 매우 맛있게 먹었다.  

뭔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아포가또가 우리집에서는 '비엔나커피'로 불린다.

어렸을 때 엄마는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가끔 인스턴트 믹스 커피에 한 수저를 떠서 넣고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빙글, 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비엔나 커피네"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커피+아이스크림은 '비엔나 커피'라고 상식처럼 여기고 있었다. '비엔나소시지' 처럼 이유도 모른채, 지극히 당연하게.
그러다가 대학시절인가, 한 친구가 커피메뉴 중에서 아포가또를 주문하자 에스프레소에 잠긴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걸 보면서 '응? 저걸 비엔나 커피라고 부르지 않나? 엄마가 만든 말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제사 찾아보니 '비엔나 커피'라는 것도 실제로 있었다. (비엔나에서도 비엔나커피라고는 불리지 않는다지만)  

심지어 그 유래가 300년이나!
 

'비엔나 커피'는 비엔나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을 얹은 걸 말한다.  

하지만 우리집에선 여전히 믹스 커피위에 아이스크림 한 수저 넣은 것이 '비엔나커피'다.  

아메리카노가 믹스커피로, 휘핑크림은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둔갑했지만,

사브레 쿠키와 '비엔나 커피'를 즐기던 엄마는 우아하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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