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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Jan 08. 2016

누군가를 초대해서 함께 먹는다는 것

집에 초대하는 것은 내 인생속으로 초대하는 것

일러스트@황인정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옥상에 전구를 두르고 큰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과

가슴에 하트를 붙이고 둘러앉아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는 식사 장면이 참 보기 좋았다.

어렸을 때는 외식하는 날만 기다리곤 했는데, 이제는 맛이 좀 덜해도 누군가의 집에 모여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물론 집을 치워야하고, 장 보느라 돈이 들고, 모두가 돌아간 후 평소보다 많은 설거지를 해야하지만, 힘들다고 여겨지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처음 '초대'라는 것을 해 본 것은 결혼을 하고 일본에 건너가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플라스틱 접시에 방도 원룸이라 좁디 좁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둘만의 살림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소꿉장난 같기도 했지만, 둘의 공간이 생기고 해보고 싶었던 것이 손님 초대였기 때문에 그 좁은 방에 친구 커플을 초대했다.

처음 보는 장이라 쓸데없이 이것저것 많이 사기도 했고, 부엌은 엉망징창이었지만,

어묵탕을 끓이고 이것저것 고기와 야채를 튀기면서 남편과 나는 신이 났었다.


‘간소한 삶’을 모토로 세계 각지 사람들의 부엌을 직접 찾아가서 보고,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함께 먹은 경험을 담은 “The kinfolk table”라는 잡지가 있다. 편집장 네이선 윌리엄스는

잡지의 소개글에서 ‘Hygge’라는 덴마크 단어를 소개했다.


“덴마크에는 요란하지 않게 손님을 접대하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촛불을 켜고 아늑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는다는 뜻이다.


‘Hygge’(발음은 후가와 비슷하다)!

영어에도 이런 단어가 있다면!!”

한국어에도 이런 단어가 있다면!


우리 나라의 '밥상'이라는 단어와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밥 먹을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던지,

나이 차가 있는 분들과의 순서라던지,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많기 때문에

선뜻 '후가'같은 단어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잔치 같이 큰 규모의 손님 접대 가 있긴 하지만.


우리집은 식탁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데도,

할아버지는 아직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시대에는 얼른 먹고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했지. 좋은 시대다.”라고.

그렇게 부지런하게 일하신 덕분에 우리가 ‘후가’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겠지만…


외국에 잠시 살 때, 사람들을 초대하면 대부분 유학생 신분이라서 그런지, 외국에서 먹기 힘든 김치만 있어도 우와 하면서, 불러서 같이 밥 먹는 것이 고맙고 기쁜 일이었다. 한국보다 방은 더 좁고, 찬은 더 없는데도

그런 마음가짐이 우리의 식탁을 자연스럽게 “파티”가 되게 하였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손님초대가 서로 “안 할 수 없고”, “안 갈 수 없는”,

뷔페를 차려도 즐겁지 않고 “해냈다”로 마쳐지는 “행사”가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일 뿐이고 손님초대는 부담스럽고 거창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도 ‘후가’ 처럼, 손님초대가 즐거운 일이 되면 좋겠다.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리지 않아도 함께 즐기는 것에 관심을 두고,

초대한 이들만의 요리비법을 즐기는 저녁을 만드는 일이 되면 좋겠다.


언급한 잡지에서 “릴리 올드”라는 여성을 인터뷰 했는데, 그녀는 손님초대에 대해

“어려서부터 좋은 음식과 맛있는 디저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음식맛이 좋아서 오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다함께 나누어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매우 강력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힘이 무엇인지 점점 더 느끼고 있다.


내가 반주하고 있는 중창단의 연말 모임을 우리집에서 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부천에 거주하고 있어서 몇 대의 차량으로 한 시간 가량 걸려 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대하며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해 주었다. 음식 솜씨로 치자면 40대인 언니들에게 비할 바 아님에도 좋은 시간을 만들려고 초를 켜고, 식탁보를 깔고, 요리를 하고, 집 문을 열어 장소를 제공하는 마음이

사람들을 이쪽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평일에 초대할 경우에는, 대단한 요리 같은 것은 할 수 없기 때문에 볶음밥에 카레를 풀어 매콤하게 만든 카레볶음밥과 한 종류의 파스타만 만들지만, 그 앞에 초를 켜고 크래커에 잼을 발라서 과일 몇가지를 얹어두면 금새멋지고 아늑한 밥상이 된다.

사이다를 마셔도 와인잔을 꺼내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분위기는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요리솜씨가 좋은가, 가 얼마나 멋진 식기를 가지고 있는가, 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시간을 나누고 싶은가, 이다. 차린 음식에 대해서, 식기에 대해서 우리는 놀라고, 칭찬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은 식탁위에서 타들어가는 초 만큼이나 깊게 흘러들어가는 우리의 관계인 것이다.


올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초대하고 함께 먹고 이야기할것이다.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은 내 인생 속으로 초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열어 그들이 가진 놀라운 면들에 영감을 받을 준비를 하는 거지요. 우리 집에 온 사람들에게 전 항상 무언가를 대접해요. 차, 커피, 케이크, 저녁 식사, 또는 무엇이라도! 이런 초대는 그저 즐기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가 돼요. 그들은 나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자극하고, 나 또한 그들에게 같은 일을 하게 되지요.” -세이어 리처즈(the kinfolk table의 interviewee 중 한 사람)

집에 초대하는 것은 내 인생속으로 초대하는 것.

그인생속으로 초대할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자마자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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