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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Mar 04. 2016

가스렌지로 성큼 다가가, 꼬꼬뱅

 모든 것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다

일러스트@황인정


에세이에 삽화를 그려주고 있는 인정언니 부부를 초대하면서, 이번에는 웬일인지 나도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초대하면 요리를 잘하는 남편이 뭔가 멋진 것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청소를 하고, 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해왔다.

찌개나 간단한 반찬을 만들 줄 알지만 해 놓은 것을 보면 하여튼 뭔가 남편과 달랐다.

스케이팅 경기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잘 못하는 사람들만 보고 있으면 잘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잘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야말로 군계일학 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보인다. 사람들 머리 위로 머리 하나가 비쭉 나온 것처럼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게 티가 난다.


남편은 육개장을 맛있게 먹고 온 날이면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런 분야가 있다. 인테리어 프로그램에서 벽을 반 나누는 걸 설치하는 것을 보면, 우리 집에도 저건 해 볼 수 있겠는데, 라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만 벌리고 볼 뿐이지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못하는데 말이다. 반면에 나는 잡지나, 예쁘게 만든 팜플렛을 보면 비슷하게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전공은커녕 포토샵을 잘 다루는 것도 아닌데 비슷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다.

학생 때는 파워포인트나 문서, 초대장이나 신문, 연주회 프로그램 만들 일이 있으면 밤새 만드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지도도 좋아한다. 새로 이사 와서도 나는 똑 같은 길을 이 버스 저 버스 타보며 길을 익히는 것이 수고스러우면서도 설레서,더 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서도 모험을 하는 양 즐겁다고 여기는 것이 스스로도 좀 변태스럽지 않나 싶기도 한데,,,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나는 요리에 있어서라면, (이렇게 푸드 에세이를 쓰고는 있지만), ‘요리 머리’가 없다. (가끔 남편이 만든 요리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데, 사진을 보고 삽화를 그리는 인정언니가 ‘요리머리가 좋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요리 머리가 다르다. 재료와 조리 과정을 상상해 내고 이어지는 맛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적으로 되는 머리 속.

우리가, (그러니까 여기서는 여자들) 쇼핑할 때 돌아가는 머리 속처럼.


나의 경우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만 설거지하는 장갑을 끼는 것에는 거침없다.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며 늘어진 몸을 추스르려고 할 때 설거지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뭉텅이로 있는 그릇들을 씻고 쌓여있는 그릇들을 씻어 차곡차곡 얹어 놓으면서 개운하고 단정한 기분이 된다.

그리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운동화를 신고 아파트 한 바퀴를 달린 듯한 시원한 마음이 된다.

반대로 일하다가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면 남편은 닭을 튀기기도 하고, 양파를 튀겨보기도 한다.

나는 진이 다 빠져서 일단 뭐라도 먹고 움직이면 좋겠다, 쪽이고, 남편은 먹고 나면 이젠 쉬어야 하는 타입.


그런데 이번에 손님들을 초대하면서 선뜻 나도 요리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좀 설레고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연습도 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꼬꼬 뱅. 음식이 돋보이도록 주물냄비도 구입했다.

(주물냄비에 김치만 넣고 끓여도 기가 막힌 묵은지 찜으로 만들어진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백화점에 갈 때마다 이리저리 둘러보기는 했지만 사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에 그 마법의 힘에 조금 기대보고도 싶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영화 <줄리앤 줄리아> 에도 나왔었고,,(쇼핑의 이유를 찾으면 끝도 없음으로 여기까지)

그래서 구입했다.


연습은 프라이팬에서 했다. 선물 받은 와인도 있었고, 닭 조각 5개가 들어있는 작은 팩을 사서 만들어 보았다.

먼저 프라이팬 위에서 마늘을 볶는다.

올리브유가 달궈지면 얼려놓은 다진 마늘을 한 덩이 올린다.

잘게 다진 상태로 돌아가면서 올리브유로 코팅된 마늘이 챠-악 하고 소리를 내며 익는다.

매우면서 고소한 향.

그 위에 다시 닭고기를 올려놓으면서 뒤집으면 다진 마늘과 범벅이 되면서 풍미가 스며들며 보기에도 좋고 냄새고 그럴듯한 상태가 된다.그 위에 와인을 조금씩 흘려 부어 잠길 정도가 되면 프라이팬 뚜껑을 닫고 졸인다. 우리 집 프라이팬은 뚜껑이 없어서 크기가 다른 뚜껑으로 적당이 덮는데, 그렇게 크기가 다른 뚜껑이라도 덮는 것과 덮지 않는 것은 맛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실 와, 맛있다! 싶은 것으로 만들자면, 닭볶음 탕이나 찜닭 쪽이 좋을 것이다. 일단 배를 갈아 넣고 간장 양념을 하면 깊고 진한 양념 맛이 고기 안쪽까지 배고, 설탕과 참기름까지 더하면 누구나 좋아할만한 맛이 나니까 실패할 확률이 적다.


하지만 꼬꼬뱅은 와인을 넣고 졸인 만큼 그 색이 낯설 정도로 자줏빛이 되서 맛이 강할 것 같아도,

막상 베어 물면 의외로 담백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심플하다.

알코올은 모두 날라가고 단 맛도 없다. 설탕도 넣지 않으니까 오히려 백숙 같다.

그런데 왜 하필 꼬꼬뱅을 만들었는가, 한다면, 글쎄, 나도 뭔가 성큼 가스렌지로 다가가고 싶었다고 할까,

겨우 두 세 번 먹어본 프랑스 요리인데도 주물 냄비부터 흐릿하게나마 이것 저것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요리 머리’를 그대로 풀이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해서, 많이 먹어 본 음식은 실력도 금방 드러나지만 이런 요리들은 하는 것만으로 이야기 하기도 좋고

맛이 좀 덜해도 귀엽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아닙니까?)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일 날 주물냄비에 넣고 중불로 오랫동안 졸인 꼬꼬뱅은 맛있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지어 텔레비전에서 하는 “프랑스 가정식”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양송이 버섯을 두 조각으로 잘라

버터와 레몬즙을 끓인 물에 익히면서 양송이 겉면이 광택이 나도록 하는 걸 보고 저거다! 하고 응용해서 얹은

양송이는 정말 맛이 좋았다. (이것도 요리 머리 겠지요!)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레몬이나 오렌지를 사놓고

그 즙을 짜서 사용할 때마다 퍼지는 상큼하고 신선한 향에 금방이라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면 기분 좋게, 선뜻 그 자리에 가서 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라고 필립 로스는 말했지만,

요리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이므로 영감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다.

책상을 깨끗이 치운다거나(책상 서랍 치우다 추억 속에 잠겨버릴 위험도 있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노트와 펜을 준비한다거나. 재즈 라디오를 틀어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꼬꼬뱅은 모두가 좋아해 주었다(고 믿는다) 특히 멋지게 광택을 낸 양송이 버섯을

모두가 걷어 먹어 주었을 때, 아, 이런 기분에 요리를 하는 거구나! 모두를 보면서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어설프게나마 전날 남편과 열심히 설치해 본 필라멘트가 보이는 전구 두 개 밑에서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전달했는지는 몰라도, 좋은 저녁 시간을 보내는 데 내가 일조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푸드 에세이를 쓰며 40회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관찰하고, 발견하고, 다시 돌아보고,,,

이제 내가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과 주물냄비 앞에 섰다.

모든 것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 변해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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