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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Jun 17. 2016

굴 먹고 도망치기

엉뚱한 용기가 주는 의기투합의 기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해도 코트 하나와 목도리 하나를 가지고있을 뿐이다)의 코트를 여주인공이 입고 파리에 간다. 겨울내 입었던 코트! 영화 속에서! 더구나 파리에서! 촌스럽게도 신기하다.

내 감각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군, 부터 나도 저 코트를 입고파리에 가야지! 로 이어지는 이상한 결론.


 환갑에 가까운 남자와 여자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파리에 간다. 약간씩 삐걱거리는 그들의 사이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영화가 흐르면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13년 전 남편의 외도 때부터 조금씩 쌓여온 불신, 실망, 회의, 그리고 권태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나지 않은 두 사람의 여정에 다 드러난다는 것이 신기하다.

남자가 미리 예약한 호텔이 기대와 다르다. 이런일은 여행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여자는 남자에 대해 오랫동안의 실망감이 한꺼번에 올라와 참을 수가 없다. 무작정 택시에 올라타 고급 호텔에 투숙해버린다. 자신도 바람을 피울까, 이혼을 할까, 외국에 갈까,,,병에 걸린 여자는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곁에 있다.

그런 두 사람에게도 일종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데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굴 요리를 먹고 계산할 수가 없어 도망을 칠 때다. 둘은 지하와 주방을 통과해 환기구를 통해 빠져 나와 무작정 달린다. 해 본적없는 어이없는 일탈에 숨이 트이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끼고 두 사람은 달리면서 웃는다. 그리고 아주뜨거운 키스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도망가 본적이 없다. 만원이 있으면 만원을 가지고 먹을 수 있는 가게에 간다. 메뉴의 가격이 예산을 턱없이 벗어나면 쑥스러워도 다시 식당을 나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시트콤이나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종종 나온다. ‘마이걸’에서는 남의 결혼식에 당당히 들어가 얻어 먹고 축사까지 한다. 도망치다 걸려도 유쾌하다. 호기로운 추억이 된다.  


언젠가 충동적으로 비싼 음식을 먹고 도망 같은 걸 쳐본다 해도 심장이 터질 듯 조마조마해서 몇 년이 지나도 “그 때 도망가셨죠” 라고 찾아 올까 봐 갑자기 놀라기나 할 위인이다, 나는. 뛰어가는 내내 불어오는 바람을 자유롭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뒤를 계속 돌아보며 바들바들. 하나도 멋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나름대로의 기상천외하고 엉뚱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평소에 전혀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되는 타이밍이 있다. 사랑은 타이밍, 이 결정적인 것처럼 오래된 연인들이 무언가를 다시 회복하게 되는 사건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래도 좋았던 시절, 아직 남아있는 감정, 더 깊어진 감정, 이런 것들이 과연 앞으로도 함께 할 만큼 강렬한것인지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 영화처럼 이런 의기투합의 타이밍이 온다면 그들에겐 또 한번의 기회가주어지는 것이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엉뚱한 용기가 주는 의기투합의 기회.

 창 밖에서 바라보고 저걸 먹고 나면 거지가 되겠네 싶게 비싸 보여도 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성냥을 들고 바라보던 환상의 음식처럼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적어도 먹는 동안은) 마음이 들어 먹고 도망칠 때까지 우아하게 앉아 즐길 수 있는 담력이 생기는 것 같은 그런 날.


 생각해보니 저 주인공이 입고 있는 코트를 살 때도 그랬다. 코트를 입어보면서 이제껏 찾으러 다닌 것처럼 마음에 들었다. 매장을 백 바퀴 돌아야 백화점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고 또 보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더 보고,,라는 말이 나오는 게 여자들이건만. 그날따라 나도 남편도 처음 들어간그 매장에서 입어보고 단숨에 맡겨두었던 세탁물 찾듯 고민 없이 사서 입고 나왔다. 그날 산 코트와 목도리는내가 가장 아끼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도 나중에 파리에 가자. 나는 저 코트를 입고 갈 거야.


그 때 우리의 사이는 어떨까. 저들처럼 아슬아슬, 지긋지긋할까. 장난 같은 지금의 약속을 지킨답시고 저 아름다운 도시에 함께 갔을 때 저들에게도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올까?


비싼 굴 요리를 먹고 환기구를 통해 도망치지 않아도 여전히 낭만적으로 의기투합할 타이밍이 올까.

 영화의 마지막, 카페에서 둘이 음악에 맞춰 폴카인 듯, 발을 구르고 손뼉을 짝, 치며 스텝을 밟아 가는 것을 보면서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이 눈을 마주하며 추는 로맨틱한 왈츠가 아니다. 각자 춤을 추지만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게 참 현실적인 엔딩에 걸 맞는 댄스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가 올 때 나도 호기롭게 미친 척 값비싼 굴 요리를 주문할 지 모르겠다. 주머니엔 몇 푼 있지도 않으면서. 굴은 먹지도 못하면서.

다만 그 식당이 의기투합의 용기를 불러 일으킬만큼 환상적인 요리를 내놓는 곳 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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