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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hwan choi Jan 31. 2023

당신의 걱정을 여기 내려놓으세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2022년은 개인적으로 참 파란만장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너무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나마 작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한 보상으로 제 자신에게 상을 주며, 안식월처럼 휴가를 얻어 지난 10월에 20대/30대 때에 가지 못했던 생전 처음의 유럽 배낭여행을 갈 수 있었습니다.


첫 도착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였습니다. 오버투어리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관광객이 엄청 많은) 대도시,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FC 바르셀로나의 도시, 지중해의 일출을 보며 너무 좋았더랬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더욱더 감명이 깊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원래 일정은, 바르셀로나 일정을 마친 후 포르투갈의 '포르투' 도시로 바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며칠 앞두고, 일정을 급히 변경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로 가는 게 아니라, 포르투 북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갔다가 1박 하고, 버스를 타고 포르투로 이동(버스로 4시간)하는 일정으로 변경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은 아실 만한, 그 종착점이 되는 마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며,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중세 가톨릭의 3대 성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 제자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 통로



많은 사람들이 순례자의 길을 직접 걸으며 (짦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정도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긴 여정 - '스페인 하숙'에서 다룬 적이 있음),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여러 도시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합니다.


워낙 순례자의 길로 유명하기 때문에, 속으로 내가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닌데 굳이 저기 들렀다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처음에는 일정에서 제외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다녀온 프랑스인 팀원 친구가 자기도 순례자의 길은 걷지 않고 종착지만 다녀왔는데 그렇게 해도 너무 좋았다고 추천해 주길래, 부랴부랴 일정을 변경했었더랬습니다.


그 일정 변경은 너무나 잘했던 결정이었습니다.



여행 당시에도 대성당의 모습과,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이 좋았었지만, 2022년 연말에 한 해를 추억하며 다시 한번 사진들을 돌아보던 중, 한 사진의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Leave your worries here"

(당신의 걱정을 여기에 내려놓으세요)


누군가가, 대성당 앞 광장에 분필로 새겨놓았던 글귀였습니다.


비록 제가 순례자의 길을 직접 걸은 건 아니지만, 아마 긴 시간 동안 걸어왔던 순례자들이 그 힘든 지친 발걸음을 마지막에 내딛고 난 후 저 글귀를 마주한다면, 또 그다음 한 발을 내딛는다면, 그 심정이 어떨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순례자들은 그 오랜 기간 걸으며 각자의 인생을 돌아봤을 것입니다. 험난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입니다. 지친 상태로 겨우겨우 내딛고 드디어 종착지에 도착합니다. 바닥의 "당신의 걱정을 여기 내려놓으세요!" 문구를 보며 그 걱정과 염려를 하트 위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대성당 앞으로, 이제는 훨씬 가벼워진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더 내딛습니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저 역시, 저 사진을 다시 보는 순간, 위로받고 격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이 같이 떠오르며, 이 사진은 2022년의 험난한 긴 여정을 힘겹게 버텨온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수고했어... 너무 잘했어... 이제 그 걱정, 그 염려, 지금 들쳐 업고 있는 바로 그 짐! 여기 내려놔..."



네. 한결 위로가 됩니다. 이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2023년에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혹시 지금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가정에서, 또 어디서든 힘든 상황에 계시다면,


"그 걱정 내려놓으세요. 지금까지 잘 해오셨습니다. 힘을 내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3년 모두 행복하게 삽시다.


(2023.01.0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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