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즐거운 것을 하고 싶다
어제는 뭔가 일이 아니면서 즐거운 것을 하고 싶어서 일본 여행중에 찍은 영상을 편집했다. 이른 오후부터 책상에 앉았고, 6분짜리 영상을 만드는데 꼬박 열두시간이 걸렸다. 대학 시절 이후 영상 만드는 것에 그렇게 집중해본 건 처음이었다. 새벽엔 어깨가 아프고 눈이 따가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과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그렇게 내내 보고 있자니 행복해서 약간 울컥하기까지 하더라.
뭔가 뿌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덕분에 다시 수면사이클이 엉망이 됐다. 예정된 운동은 가지 못했고, 커피 한잔하자는 급 연락도 놓쳤으며, 저녁이 다 된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데, 이유는 꿈을 무척 길고 선명하게 꿨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등장했는데 나랑 꽤 길게 연애중인 사람이었다. 문제는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수백번 들렸다던 그 사람의 집도, 하물며 그 사람 이름도 몰라서 언니에게 000알아요? 라고 물어보기까지 하며 언니,나 이상해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내게 괜찮다며 환하게 웃었고, 걱정하지 말라면서 나를 꼭 안았는데 그게 얼마나 안심이 되고 편안했는지. 눈을 뜨고도 한참을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헷갈렸다. 꿈이 아니길 원했는지도. 설레는 연애가 아니라 당연한 사랑이 하고 싶은 것임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데 내 무의식이 나를 조른다. 사랑이든 뭐든 하라고. 즐거운 걸.
글쎄, 내가 다시 사랑할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까. 이미 나는 눈을 닫고 귀를 닫고, 아무에게도 품을 내주지 않는데. 현실은 나 하나를 보듬는 것조차 벅차다. 모두들 하기 싫은 일 안하고 놀고 즐기고 행복하기만을 바라지만 그런 인간은 없다. 예정된 일은 없고 계획된 일만 많아서 초조하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놀고 내일 또 뭔가를 하자. 뭐든 즐거운 걸 하자.
2019 0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