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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현 Apr 10. 2019

니 그래 말하는 거 보믄 안다

너 그렇게 말하는 거 보면 알아


어제 작업이 많아 열두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나를 엄마가 가만히 쳐다보길래 '내가 이래 산다' 카면서 웃었다. '잘 자자'하고 누웠는데 밖에서 계속 빗소리가 들리길래 머릿속으로 '비는 만다꼬 이래 계속 오노..'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며칠 같이 있었다고 생각마저도 사투리로 하고 있다. 부산 가스나가 서울에 올라와 산지 십 년이 넘었고, 사투리 전혀 안 쓴다는 말을 듣지만, 며칠 만에 의식 없이 튀어나오는 걸 보니 사람의 언어라는 것은 세포처럼 남는지도 모른다.

나는 태어나서 사투리로 세상을 배웠으리라. 먹는 것 입는 것 모두를 부산 사람의 방식대로. 스무 살부터는 서울말로 서울살이를 배웠듯. 언어라는 것은 배움이다. 기본적으로 모국어조차 그러니, 외국어는 배우고 배워도 어렵고 말 한마디 하려 하면 머릿속에 온갖 번역과 계산이 돌아가야만 하는 게 당연하다. 말에는 사람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 살아온 곳, 살아온 환경, 그로 인해 생성된 인격과 성격, 성향과 취향까지. 그리고 사회를 반영한다.

어제부터 생리가 시작되었는데, 트위터에다 '생리 시작하니 컨디션이 별로..'라는 말을 남기려다 문득, 학생 때만 해도 '마법에 걸렸어'라는 표현 따위를 썼었다는 걸 떠올렸다. '생리'라는 말을 무슨 볼드모트의 이름처럼 꺼내서는 안 될 말처럼 대했었다. 남자 선생님이나 남자 친구들을 피해 '몸이 좀 안 좋은 날이라..' 하는 눈치게임이 있었고 마치 마약거래를 하듯이 생리대를 공유했다. 요즘은 파란 피에 마법 같은 괴상한 표현이 아니라 당연하게 나 생리 중이라는 광고도 나오는 세상이다. 마법은 무슨. 아프고 불편해 죽겠구만. 그걸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배운 것이었을까. 시대가 바뀌고 당당히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요즘 시대의 어린 친구들은 어떨까? 적어도 '그거 있니 소곤소곤'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아니, 왜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해! 이 생리가 내 생리다! 왜 말을 못 해!

비슷한 예로 언젠가 지인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다 '섹스'라는 단어가 한참 거론된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그 말 너무 불편하고 부끄럽다'라고 했다. 그거 그냥 영어야. 티비랑 커피 같은 단어라고. 너 섹스 안 해? 그럼 뭐라고 불러? 그 사람은 '관계' '잠자리' '그거'라고 말한다며 자기는 그 단어를 평생 입 밖에 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니, 멀쩡한 단어 놔두고 관계는 뭐고 그거는 뭐냐며, 한참 그 단어의 사용에 대해 토론을 했었다.

언어가 주는 생각과 의미는 절대 개인의 것일 수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관념을 거치고 타인을 인식한 후에 언어가 사용되며, 또 그 언어를 통해 각각의 모습이 드러나 사회에 스며든다. 수많은 시간과 논의 끝에 계속해서 변한다. 언어는 살아있다. 어떤 단어는 죽고 어떤 단어는 새롭게 태어난다. 뒤늦게 조명되어 이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 되기도 하면서. 몇백 년 동안 그대로 전해져 그 형태 그대로 똑같이 유지된 말들이 얼마나 있을까. 몇 년 전에 '버카충' (버스 카드 충전)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고, 아영이랑 '문센' 아냐고 (문화센터) '거셀' 아냐고 (거울 셀카) 서로 놀리고.. 생각해보니 나조차 TMI (Too Much Information)나 1도 없어,(하나도 없어) 같은 말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기억도 없다.

(말 나온 김에 이거 TMI인데) 예전에 식당 뒷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분에게 반한 적이 있다. 외모는 둘째치고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너무 좋았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 예의 바르고 차분했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고 아쉬움과 후회만 남았다는 결말.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어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서울 사람들과 부산 친구들에게 나는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내 외모와는 별개로 나는 타인에게 어떤 말로, 어떤 단어로 나라는 사람들 보여주고 있을까.

계속 사투리를 쓰는 나를 보고 친구가 순간 당황하며 깔깔 웃었는데, 아마 엄마가 가고 나면 나는 또 순식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서울말을 쓰겠지. 딸내미 잘 잤나, 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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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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