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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l 18. 2023

합격하셨습니다.

돈을 지독히도 아끼던 20대 중반 어느 날,

굿네이버스 해외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나만의 셈법에 의하면 수입의 10%를 넘지않는 선 내에서 타인을 위해 쓰는 돈은 오히려 수입총액에 +가 되는 것으로 하였으므로 기부는 수입활동으로 계산되었다(난 예나 지금이나 가계부를 쓴다!).


굿네이버스를 택한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농구팀 친구 W가 굿네이버스에 취직을 했다.

(중학교 때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우리 팀은, 전원 레이업을 하고 원핸드슛을 쏘며, 매년 나이키, 아디다스 등이 주최하는 3:3을 나가고 있는 어엿한 팀이다.)

우리 팀 주장자 가장 철이 든 W가 우리 중 처음으로 취직을 하자, 다함께 기뻐하며 후원등록을 했다. "나의 후원금을 지켜줘!"하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장장 15년간 월급에 맞게 조금씩 후원금을 늘려가며 후원을 이어왔다. 그런데, 이런 금전적 기부활동은 후원의 핵심적인 부분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쉽게도 매우 간접적인 활동이란 한계가 있다. 직접 후원하는 아동을, 그 나라를, 그 환경을 가서 대면해본 적이 없어서, 그 어려움을 그 아동에 대한 책자로 접해볼 뿐이다.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들여 도움이 필요한 현장을 가보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지... 괜히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는게 아니다.


돈으로 후원할수록 시간과 노동으로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2주 전, 문득 CASE 처리를 마치고 한숨돌리는데 굿네이버스의  메시지가 왔다.

굳이 눈여겨 읽어보지 않는데 그 날은 왠일인지 멍하니 메시지를 읽었다. 연수 이름으로도 후원을 하고 있고, 그 연락처가 나로 등록되어있어서 후원자 연수 앞으로 온 메시지같았다. 근데, 연수는 초등학생인데, 지원자격이 고등학교 1학년 이상인 봉사를 하라니. 자격이 안되서 아쉽네.

.

.

아쉽네.

.

.

흠.

지원자격이 고 1이상이라면...상한선은 없나?

...30살 이상은 안됨-같은건 없는건가?


그러니까 저 메시지가 왜 후원자 연수씨 앞으로만 왔는지는 몰라도, 난 지원자격이 된다는 의미로 보였다. 저 밑에 링크를 클릭해보았다. 번역봉사는 결연아동들이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외국 거주 경험도 묻고 영어시험성적도 묻고 각오도 한마디 적었다. "다음"을 누르면 그대로 제출인줄 알았는데, 이젠 실전테스트를 보았다(굿네이버스에 신뢰가 급상승하는 까다로움!). 결연아동들의 편지 몇개를 번역해보라고 했다. 난 영어를 그럴듯한 한국말로 맛깔스럽게 바꾸는 건 조금 소질이 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화체로 번역해보았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종종 지원서 생각이 났다. 지점장님 보고를 다니다가도, 연수한테 해열제를 먹이다가도,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끼어서 천장을 보다가도 생각이 났다. 불합격은 이렇게 연락도 못받는것이구나- 했다.


오늘, 업무 중에,

뚜뚜.-

문자가 왔다.



합격하셨습니다!


오!

합격하셨습니다!


저 문구도 정말 오랜만이다.

언제나 저 문구는 좋구나. 이번엔 특히 좋다.



오늘 저녁 퇴근시간 무렵 하늘이 오랜만에 파랬다.

그리고 마음이 몽글했다.

번역봉사를 할 수 있다.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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