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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l 18. 2023

출장

오늘은 출장 날이다.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외쳐본다, 유후!


우리 회사 출장은 험하다. 기존 CASE에 문제가 있으니 보수차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하러 가기도 하며 자료 수집차 가기도 한다. 회사에선 출장이 별로라는 의견이 대다수인데, 그 근거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출장 is not in my territory"라는 것이다. 즉, 한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아군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낯선 땅에 떨어지는 기분이 별로인가보다.


그럼에도, 출장이 좋다.

출장이 잦아진 것은 그만큼 내가 다루는 CASE들이 굵직해졌기 때문이었다. CASE가 가벼울 때는 보수할 것도 없었고 협의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CASE 하나가 돌덩이처럼 무거워지자 출장이 생겼다. 그런 CASE들에 대해 '출장가세요-'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지만 분명 장점이 있었다.


그건 회사에서의 일상에서 잠시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조조의 연환계에서 혼자 이탈한 배를 들어볼 수 있겠다.


출장을 다닐 무렵부턴 아군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릴 만큼 회사 내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는데, 종일 일을 주려고 불러대는 통에 평소 창고나 골방을 찾아두었다가 호출이 계속되면 거기로 도망가 핸드폰없이 십분정도 쉬었다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출장입니다!"라는 말이 "축하합니다! 오늘은 모든 종류의 연락에 대해 출장이라고 대답하시면 되는 날입니다."로 해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대답의 자유는 딱 오늘 뿐이고 내일 두배가 아니라 세네배의 일이 예정되어 있다해도, 오늘의 고요함이 너무나 반갑다.


특히 오늘은 출장지에서 대기시간이 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탓에 일전에 옆방 Lee로부터 받았던 본사해설집을 가져왔다. 늘 그 해설집을 펼칠 땐 진짜 방법을 찾다찾다 모르겠어서 펼치는 것이었고, 그 The last minute에는 그 책에 검은게 글씨라는 것말고는 건질 것이 없어 보였는데, 오늘보니 거의 밀리언셀러 급으로 잘 썼다. 이제 그 해설집에서 설명해준 CASE들은 다 자신있다(거짓말!), 내일 출근하자마자 보여줄테야!(더 거짓말)


아울러, 오늘은 아침에 차몰고 출장와서 철인3종이 생략된 날이다. 아쉽고 다행이고, 힘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출장 많이 다닌 사람답게, 양치도구를 가방에 넣어온 나를 칭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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