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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05. 2023

게임을 사랑하는 아드님께

게임하는 전용폰이 있으면서도,

성능좋은 아빠 핸드폰에도, 다소 느리고 불편한 엄마 폰에도 게임 앱을 잔뜩 깔아놓는 연욱아.

니가 가장 좋아하는 로블*스가 아닌 주조연 게임앱을 깔아두는 것은 와이파이가 안되거나 핸드폰을 안가지고 나온 순간에도 게임을 하고 싶어서겠지.


넌 너와 나의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즐기는 것 같아. 그 중에 으뜸은 '게임을 대하는 우리의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게임하다가 외할머니에게 혼난 얘기를 너에게 하도 많이해서 그런가, 넌 누구보다 엄마인 내가 널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더구나. 심지어 내가 '너는 나와 닮았기 때문에 닌텐도를 집에 들여서는 안된다'며 닌텐도 구입을 반대했을 때도 넌 별 말 없이 수긍했지.


너와 나 같은 '게임능력자들'은 게임을 곧잘 한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야. 게임이란 자고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재미있기 위해서, 혹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하는 것인데, 계속 레벨업은 안되고 전쟁에서는 지고 길에서 떨어지고 나면 스트레스는 쌓이고 재미도 없고 무료함이 짜증으로 변하기까지 하니까. 결국 게임은 잘하는 사람이 더 좋아하게 되더구나.


너의 페이보릿은 로블*스, 나의 페이보릿은 삼국지. 우리는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어렵다면 어려운 그 게임에 진심이지. 너도 나처럼 게임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볼 때면 왜이리 신나는지 모르겠어. 나는 주로 '손견' 군주 체제로 게임하는 걸 즐겨. 그러면 군사로는 '주유'를 임명하고, 수전이 가능한 지형만 골라서 전쟁을 벌이며 혼자 1인 4역을 한단다.


"(주유) 주군, 조조군은 우리 병력의 4배가 넘습니다"

"(손견) 군사, 정찰병에 따르면 조조군 중 수군을 거느리는 장군은 한 명도 없소, 수군과 육지군이 붙으면 100명으로 3,000명이 넘는 적군과 맞설 수 있으니 결코 불리한 싸움이 아니오"

"(황개) 그렇다면 어찌 이리 적은 숫자를 출병하시나이까. 차라리 정예 수군을 총동원하시지요"

"(정보) 조조군은 수적으로 우세한 전쟁에서 선공을 합니다. 우리는 저들이 반드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하니 적은 군사로 유인해야 합니다"


이 기분은... 아, 얼마전에 니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영화를 봤을 때 느낀 것과 같은거야.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들이 말도 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것. 내가 그 게임 안에 들어가는 것도 상상해봄직 한데, 삼국지는 게임 안에 들어갔다가는 죽을 수가 있어서 난 그건 싫단다.


내가 게임을 통해 진짜 깨달은 것은 바로 '부족함이 주는 즐거움'이야. 때는 바야흐로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을 할 때였어. 천상계에서 내려준 딸을 홀로 키우는 퇴역 장군의 이야기인데, 그 딸에게 예의범절, 검술, 요리, 춤 등을 가르쳐서 온갖 능력을 키워내면 나중에 그에 맞는 직업을 갖게 된다는 설정이야. 그런데 그 능력을 키우려면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학원비도 딸이 벌어. 그래서 어떤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며칠 나갈지도 결정해야돼.


가르치고 싶은 것은 많고, 싸울 상대도 많고(중간중간 시내에 나가서 검술시합을 제안받기도 하거든), 돈도 필요하고... 게임을 몇 판 거듭해도 결과가 시원치 않자 내가 어떤 방법을 동원했는지 아니? 게임 안의 능력치를 조절한다는 무슨 프로그램을 찾아 설치했어. 체력부터 미모까지 최고치인 999로 만들고, 돈은 99999까지 늘린 다음 게임을 시작했어.


어땠을 것 같아?


난 그렇게 시작한 바로 그 판을 끝내지 못했어. 재미가 하나도 없었거든.


이 방법, 저 방법 찾아보면서 느끼던 짜릿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어. 뭘해도 1등이고, 돈은 넘쳐나서 드레스를 수십벌 샀는데 쓴 티도 안났어. 그 상황이 그렇게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엄마는 돈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한 생활에 감사해. 부족함이 없으면 삶의 기쁨은 바닥을 드러낼거야.


외할머니께서 엄마가 게임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아셨다면, 새벽에 게임하다가 걸렸을 때 그렇게까지 혼내지는 않으셨을까? 아, 그런데 외할머니께 말씀드리긴 어려웠어. 프린세스 메이커 하는 것도 모르셨는데, 그 게임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고 할 순 없잖니.


외할머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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