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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05. 2023

대답의 힘

(이 글은 필자가 독립출판사 Another W를 통해 제작했던 책의 한 챕터를 각색한 것입니다. 해당 책은 작가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어 제목을 밝히기 어려움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는거지?'


아이와 대화하다보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자주 만난다. 예를 들어, 연수가 반 친구와 떡볶이를 같이 먹으러 가고 싶은데 뭐라고 말을 걸어볼까, 고민했던 날에도 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집에서 말이 많은 연수가 학교 친구에게 말거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건 대답보다 질문이었다.

떡볶이는 어디서 얼마짜리를 먹을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학원시간표와는 겹치지 않게 갈 수 있겠느냐고 확인하고 싶었으며, 말을 걸고 싶다는 그 친구는 뉘 집 딸내미인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러나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이 고민을 털어놓은 이 중대한 순간에 오답을 넘어 궁금증을 마구 물어본다면... 사춘기라는 모래바람이 후폭풍으로 몰려올지 모른다.


이렇게 대답을 모를 때면 수십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침묵한다.


"왜 아무 말도 안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조금 더 생각해보고 말을 해볼께"

그날은 그렇게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연수가 수학학원 전국 시험을 보고 온 날도 같은 고민에 빠진 날이었다. 연수는 학원을 다닌지 1년 만에 보는 시험에 고무되어 있었고, 그동안 학원 숙제와 함께 한 날들을 떠올리며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기대에 가득차 있었다. 대망의 시험 날, 마침 회사를 하루 쉰 덕에 연욱이와 축구공을 들고 집 뒤 공터로 나가는 길에 저-멀리서 참 연수같이 생긴, 연수만한 키에, 연수와 같은 머리스타일을 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보조가방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연수였다.


 

“... 나 73점 맞았어” 

“(버퍼링 중) 시험 문제를 열심히 풀었어?” 

“... 응” 

“고생했어, 애썼어, 오늘 본 시험은 과정에 불과해. 더 잘 하기 위해 지금의 상태를 확인해본 것일 뿐이야.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속상할 수 있지만, 그동안 열심히 해온 것처럼 계속 해가면 되는 거야”(좋았어, 꽤 괜찮은 대답인 것 같아) 

“73점이 그렇게 못 본거야?” 

“응?”(도대체 ‘73점은 못 본 것이다’라는 명제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엄마는 시험을 잘 봤을 때는 ‘아이고 애썼네, 잘했어’라고 하는데 잘 못봤을 때는 길게 이것저것 말을 하잖아” 

 

그 때의 기분은, 뭐랄까. 딸이 한 수 위, 아니 열 수 위여서 나의 존재가 한없이 우습고 작아진달까.

 

그 날 저녁, 연수가 좋아하는 공기놀이를 하고, 연수가 좋아하는 카레를 먹은 다음 후식으로 연수의 페이보릿인 토마토까지 함께 먹으며 우리는 73점의 아픔을 극복했다. ‘그동안 수학학원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73점이라니’ 따위의 극렬한 오답도 아니었지만, 나의 대답은 위로나 격려, 자극 그 어느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정답이 아닌 것은 확실해보였다. 

 

다음 날 저녁,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연수가 활짝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엄마, 엄마, 수학학원에 종원이라고 잘 하는 애 알지?” 

“어, 알지, 수학학원 제일 오래다니고 숙제도 거의 다 맞는 종원이 말하는거지?” 

“응, 맞아. 종원이가 어제 79점을 맞았거든?” 

(지금 이 이야기는 종원이도 79점을 맞았으니 내 73점은 괜찮다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인가. 어제의 난제인 수학학원 시험이라는 주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가. 타인의 시험성적을 논하는 이 분위기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아, 그래?” 

“응, 근데, 종원이는 엄마한테 혼났대” 

 

그렇다. 연수가 하고 싶었던 말은 종원이의 성적이 아니었다. ‘종원이가 엄마에게 혼났다’는 것이었다. 즉, ‘나는 시험 성적을 가지고 혼을 내는 엄마와 살지 않는다’는 자부심. 그것이 오늘 현관에 나와 종알대는 연수의 얼굴과 몸 전체에 뿜어져나오는 중이었다. 연수는 옷을 갈아입는 나를 따라다니며 ‘어떻게 시험을 못봐서 속상한 당사자한테 결과가 안좋다고 혼을 낼 수 있는지’, ‘가만보면 흔한남매 엄마도 성적을 가지고 혼내는 것 같은데 흔한남매도 안쓰럽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흡족해했다. 

 

사실 그 전날부터 연수가 중,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보게 될 더 크고 중요한 시험들에 대해, 그 결과에 대해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미리부터 걱정이 되었다. 양치를 하다말고 ‘그래, 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는거지,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줄 수가 있겠어!’라고 생각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관에서 종알대는 연수를 보며 기쁘고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의 말들은 ‘아이’의 성적, 성격, 기질, 옷차림, 습관, 어투를 바꾸지 못한다. 대부분의 엄마들도 그들의 엄마로부터 잔소리를 들었지만, 그 잔소리대로 살지 않았다. 잔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성적이 갑자기 오르지도 않았다. 엄마의 말이 가진 유일한 힘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다지는 것뿐이다. 집 밖에서 지치고 속상한 일들에 치이고 뒹굴다가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면 옷이며 몸이며 붙어있는 힘듦, 속상함, 섭섭함, 서운함을 털어주고 안아주고 ‘그랬구나’ 말해주는 것.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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