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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06. 2023

괜찮아, 넌 날 닮았어.

 


연욱이는 소름끼칠 만큼 나를 닮았다. 일단 외모부터 심각하게 닮았다. 학생시절 약 10년간 태권도를 해왔던 나는 태권도복을 입은 사진이 유독 많은데, 연욱이가 태권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난 매일 그 사진이 호그와트의 액자 속 인물처럼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곤 한다.  

태권도복 사진 다음으로 많은 것이 내가 플라스틱 빨래통 속에 들어가있는 사진이다. 빨래통 밑바닥은 얇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며칠 안가 밑바닥이 부서지곤 했다. 그런 기억이 비교적 생생한 나로서는 빨래를 널다가 빨래통 속에 들어간 채 날 쳐다보는 연욱이와 눈이 마주치면 말 못할 전율을 느낀다. 

 

“연욱아, 빨래통에 들어가고 싶어?” 

“응, 안들어갈 수가 없잖아.” 

“응, 맞어, 근데 빨래통 안에서 뛰면 밑바닥이 부서질 수 있어, 그냥 들어가만 있어야 자주 들어갈 수 있는거야.” 

“아, 그래? 알았어” 

 

그렇게 난 종종 빨래통을 넘어 과일 택배 상자, 김장비닐까지 지경을 넓혀가는 연욱이를 마주하곤 한다. 

 

여기에 더하여 연욱이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완벽주의와 강박 성향이 나랑 닮아있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잠들면 찬장에 찻잔이 열을 맞춰 들어가 있는지 부엌, 화장실 불이 꺼져있는지, 현관문이 잘 잠겨있는지 몰래 확인하고 잠이 들곤 했는데, 그 성격이 연욱이에게 간 듯 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머리 속으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걱정하고 확인했던 것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연욱이는 마음껏 내게 들키고 있다는 점이다.  

 

“누나 방금 전에 웃은 건, 내가 잘 못해서 비웃은 거지?”(동생이 귀여워서 미소를 지었더니 이런 소리가 돌아온다) 

“아빠 학원가방 챙길 때 필통 넣은 것 맞아?”(기껏 가방을 챙겨주었더니 처음부터 확인하면서 의심을 받고 있다) 

“(금요일에 여행으로 학교를 빠지고 월요일 등교 준비를 하던 중) 엄마 금요일 알림장은 뭐야? 알림장에 안적은 내용이 있으면 어떡해? 준비물을 안 챙긴 거면 어떡해? 선생님에게 물어본거야? 알림장 알려준 친구가 알림장을 제대로 안 적은 것이면 어떡해?” 

 

이러한 연욱이의 성격상, 숙제는 다 해가야 하는 것이며, 준비물도 다 챙겨가야 하고, 책상 서랍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연욱이를 주변 엄마들은 부러워한다. 그럴 때면 난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방방 뛰어다닌다는, 고민이 없어 보인다는, 그저 해맑다는 그 엄마들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신기하게 듣곤 한다. 

방긋방긋 웃던 연욱이가 갑자기 예민을 발산하기 시작하면 가족 누구도 그 사고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럴 때면 동지(?)인 내가 호출되어 연욱이의 손을 잡는다. 

 

“연욱아, 엄마는 다 알아, 엄마는 너랑 똑같아서 니가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엄마는 다 알아” 

“알아?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응, 엄마는 너랑 똑같잖아.” 

“응, 맞아, 할아버지가 엄마 보고싶을 땐 거울을 보라고 하셨으니까, 난 엄마랑 똑같으니까” 

“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되고 화도 나지? 정말 내가 잘해서, 귀여워서 저렇게 말하고 웃어주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살면서 ‘그냥’ 믿어야 할 때가 있어. 우린 다 알 수가 없거든. 모두 다 확인하고 물어보고 다닐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어.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어느 순간은 ‘그래, 괜찮아’하고 넘어가줘야 힘을 아껴서 축구도 하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해. 가족은 그냥 믿는 사람이야. 그리고 가방도 두 번 확인하고 현관에 둔 것이니까 또 열어보지 않아도 돼. 학교에 들고 갈 때는 어제 밤 가방을 준비한 나를 믿어주는거야.” 

“그게 잘 안돼” 

“연습하면 되지, 연욱이랑 똑같아도 엄마는 좋은 어른이 되었잖아. 다 괜찮은거야.” 

 

마지막 말을 들으면 연욱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렇군’ 하는 표정으로 흡족하게 일어난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와 똑 닮은 어른이 곧잘 커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빠르게 안심하는 방법인가 생각해본다. 

 

날 닮은 아이는 이해가 잘 돼서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 무렵, 내 주변 친구들이 뒤늦게 육아전선에 뛰어들었다. 내가 미취학 두 아이를 키울 때는 싱글이었던 그녀들은 이제 연욱이보다 5~6살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보육이 아닌 교육의 단계로 넘어간 나의 자녀양육을 부러워하곤 했다. 그래서 나도 친구모임을 나가는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훈화말씀하러 가는 교장선생님의 마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모임에서 학창시절 ‘자유로움(이라 쓰고 산만함으로 읽는다)’으로 유명했던 한 친구가 ‘자신을 닮아 집중하지 못하는 아들의 성격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라는 고민상담을 해왔다.  

 

“왜 바꾸려고 해? 널 닮았으면 너처럼 클텐데?” 

“... 그러면 안되니까” 

“너처럼 크면 되지, 왜 안돼?” 

 

내 질문을 받은 친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널 보니까, 엄마의 자존감이 왜 중요한지 알겠네. 나처럼 커도 되는데, 왜 고치려고만 했지’라며 웃었다. 

 

부모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아이를 보며 할 수 있는 걱정의 상한선은 ‘나처럼 될까봐’가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어린시절과는 다른 옷을 입히고 다른 교육을 시키고 다른 지역에서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난 이렇게 살았지만 넌 다르게 살아라’보다는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 괜찮아’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더욱 중요한건, 아이가 바뀔까. 고민상담을 했던 친구에게 ‘너희 엄마가 너를 혼내고 산만하지 않게 앉아있는 연습을 시켰으면 나같은 성격이 되었겠어?’라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껄껄 웃었다. 물론 나 같은 성격이 되는 것은 생각만해도 싫다는 말을 덧붙이며. 각자 평생을 함께 해온 내 자신과 적절한 화해와 이해와 공감과 격려가 필요할 것 같다. 강력한 유전의 힘이 낳은 또 다른 나와 화목하게 살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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