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배우는 파이어족 부부의 현실적 삶의 전략

'나의 꿈'에서 '우리의 꿈'으로

by 낭만봉지 김봉석


(발칸반도 동유럽 여행 / 낭만봉지)
(몬테네그로 코토르 / 낭만봉지)


2008년은

내 인생에서 여러 의미가 겹쳐 있던 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새 가정을 꾸렸고,

처음으로 수원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우리만의 울타리’를 세우기 시작한 때였다.


그렇게 우리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했다.


나는 의료기관 개인정보 보호 분야에서

꾸준히 컨설팅과 강의를 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금융 관련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서로 바쁘고 치열했지만,

나는 결혼 첫해에 아이를 갖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길 바랐다.
저녁에 김치찌개를 함께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삶 말이다.


하지만 아내는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일이 나와 맞지 않아.”

“더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고 싶어.”
그 말은 우리 인생의 첫 균열이자,

동시에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대화를 거듭하며 아내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의 꿈’보다 ‘우리의 꿈’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10년의 준비를 시작했다.

그 시기엔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읽어 투자했고,

여러 번의 이사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자산을 늘렸다.

결국 빚을 모두 갚고,

경제적 기반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상 밖에서 방향을 틀었다.
아버지가 72세에 폐섬유화와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깊은 질문과 마주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일찍 세상을 떠난다면,

지금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내 역시 회사생활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갔고,

은퇴 시점을 과감히 앞당겼다.

둘 다 사표를 냈고, 집은 전세로 내놓았다.


가전과 가구, 사소한 물건들까지

거의 모든 짐을 정리했고,

차에 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짐만 남겼다.


퇴직금과 조금씩 모아 둔 자금을 바탕으로

배당주와 ETF에 분산 투자 중이며

현금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태국을 시작으로 긴 여정을 떠났다.


지금까지 7개 나라에서 머무르며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여유,

그리고 균형을 배우고 있다.


이제 그 경험을 글로 남기려 한다.

이 글이 ‘우리만의 기록’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선택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용기와 현실적인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면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