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연습.. 파이어족의 시작

버려보니..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by 낭만봉지 김봉석
(집을 떠나는 날)

집을 전세로 내놓고

남은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막상 버리려니 무엇부터 놓아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1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물건들이었고,

결혼 후 쌓인 우리의 흔적이기도 했으니까.

책장 하나, 그릇 하나, 오래된 사진들…
어느 하나 허투루 버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른쪽엔 버릴 것,

왼쪽엔 사용할 것을 두기로 했지만
왼쪽에만 물건이 쌓여 갔다.
이렇게 버리기가 힘든 일이었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우리는 각자의 물건을 정리하며

서로가 얼마나 많은 ‘붙잡음’을 품고

살아왔는지 확인했다.


“이거… 정말 다 정리해도 될까?”
“응. 우린 떠날 준비를 하는 거니까. 최대한 비워야 해.”


그 대답은 사실 상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에 가까웠다.


며칠 뒤, 가구와 가전은 지인들에게 보내졌고

집은 빠르게 텅 비어 갔다.
마지막으로 6인용 원목 식탁이 실려 나가던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비워진 것에 가까웠다.


차에 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짐만 남겼지만

트렁크와 2열 좌석은 여전히 꽉 차 있었다.
그 짐을 바라보다가 문득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두려움, 기대, 불안, 자유…
서로 다른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입자가 들어오는 날.
집 문을 닫고 아파트 복도로 나섰을 때
뒤돌아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다시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집은 고요했고,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제 인생 2막이 시작이야.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꿈을 향해 가도 돼.'

'진짜… 떠나는 거구나.'
'이제 시작이다. 마음 단단히 먹자.'


그날 밤, 우리는 울산까지 내려가

가장 친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과거의 기억을 나누고,

앞으로 삶에 대한 응원을 받고,
아직은 희미하고 불안하지만

분명한 ‘새 길’을 확인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이상하게도

우리를 막는 벽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처럼 느껴졌다.


떠난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익숙함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지키는 것보다 놓아보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도,

그렇게 우리는 국내 곳곳을 떠돌다가

그해 11월,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숙소와 항공권만 예약해 둔 채,
아무 계획도 없는 첫 한 달 살이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했다.
지도를 펼쳐놓은 듯 열려 있는 삶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방향이 맞는지 틀린 지

오직 ‘살아보며’ 알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한 진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