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빌렸지만, 우리는 결국 걷게 되었다

오흐리드에서는 속도를 낮출수록 풍경이 선명해진다

by 낭만봉지 김봉석

자전거를 빌리면
여행이 빨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오흐리드는
우리를 걷게 만드는 도시였다.


숙소에서 올드타운까지는 걸어서 가기엔

애매한 거리였다.


조금 멀고,

그렇다고 마음먹고 이동할 만큼은 아닌 그 중간쯤.


그래서 우리는

오흐리드를 좀 더 넓게 만나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기동력이 생기면 여행도 자연스레 빨라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구글맵과 후기를 더듬어 찾아낸 작은 렌탈샵.
미리 왓츠앱으로 자전거 상태와 가격을 주고받았고,
다음 날 숙소에서 15분 남짓 걸어 그곳에 도착했다.


가게 앞에는 연식이 느껴지는 자전거들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줄을 서 있었다.
새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도시에 잘 어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그린마켓에서 배운,

아직은 서툰 흥정의 기술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하루 10유로라던 가격은
웃음 몇 번과 손짓, 짧은 대화를 오가며
결국 3유로까지 내려왔다.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힐끗 보며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여행이 주는 작은 성취였다.


간단한 정비와 설명을 듣고
우리는 곧장 오흐리드 호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햇살을 머금은 물결은 잔잔하게 반짝였고,
바람은 자전거 바퀴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 느림이 오히려 충분했다.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바이크 샵)

그러다 문득,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오흐리드의 올드타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돌길 위를 밟을 때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갈피를

하나씩 들춰내는 기분이 들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 모퉁이마다
오래된 나무와 돌의 냄새가 배어 있었고,
그 향기는 우리를 중세의 어느 하루 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이곳은 아마 과거에도,
지금처럼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올드타운)

골목 끝마다 상점과 카페가 이어졌고,
단체 관광객들의 행렬이 천천히 흘렀다.


햇살이 잘 드는 야외 좌석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해를 사랑했고,
대개 담배와 함께 그 시간을 즐겼다.
연기는 아무렇지 않게 공기 속에 섞였다.
아이들 곁에서도, 대화와 웃음 사이에서도.


우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카페 안쪽 자리에 앉았다.

아내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 작은 배려 하나로,

여행의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밖의 낭만 대신, 안쪽의 조용함을 택한 오후였다.


차 한 잔의 여유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자전거는 분명 이동을 빠르게 해 주었지만,
오흐리드는 결국 우리를 걷게 만드는 도시였다.


어쩌면 여행의 속도란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기꺼이 멈추게 되느냐로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낭만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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