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시장에서 배우는 가장 느린 언어

오흐리드 그린마켓에서 우린 한 뼘 자랐다

by 낭만봉지 김봉석
시장은
언어보다 먼저 말을 건넨다.

가격이 아닌 태도부터 배우라고,

서툰 몸짓 하나,
민망한 침묵이 주는 교훈.
우리는 그곳을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행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가 되기 위해

유럽에서 직접 요리를 하다 보니

실력이 날로 늘어났다.
아니, 늘 수밖에 없었다.
외식은 어느새 특별한 날에만 허락되는
작은 사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선한 식재료가 필요해서
우리는 올드타운의 그린마켓으로 향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채소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잘 익은 과일의 단내,
상인들의 목소리가 서로를 밀치듯 공중을 채웠다.


가격을 부르는 소리,
흥정을 권하는 손짓,
자기 물건이 더 낫다고 증명하려는 몸짓들.
질서라기보다는 에너지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익숙했다.
마치 한국의 재래시장 한복판에
불쑥 서 있는 기분이었다.


정찰가 없는 곳에서의 망설임

확실히 타마로 마켓보다
식재료는 더 신선해 보였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정찰제가 없다 보니
어떤 것은 유난히 비싸고,
어떤 것은 의심스러울 만큼 저렴했다.


우리는 잠시
토마토 앞에서 멈춰 섰다.
선택을 미루는 시간만큼
상인의 눈빛을 피하고 싶었다.
선택장애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겠지.


거기에 소통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이 있었다.
등어리부터 땀이 차올랐다.
시장의 열기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How much?”
“I’d like something… this one.”


내 혀가 문제인가 싶었다.
이렇게 쉬운 영어도
잘 닿지 않았다.
결국 번역기를 켜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는 인간 본연의 언어로 돌아갔다.


면박이라는 이름의 수업

그러다 한 상인에게
제법 단호한 면박을 들었다.
물건을 안 팔겠다고 봉투를 뺏어 버렸다.

순간 우린 당황했고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인종차별인가 싶어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직접 고르기 전에
반드시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
한국처럼 신선한 것을 직접 집어 드는 행동은
무례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우리는 친절하다고 믿었던 방식으로
누군가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던 셈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풍경을 옮겨 다니는 일이 아니라
기준을 내려놓는 연습이라는 걸
이런 순간에 배운다.


비록 구박을 받았고

얼굴은 잠시 달아올랐지만,

그날의 면박은
가장 정직한 수업이었다.


장바구니 안에 담긴 것

그렇게 우리는
신선한 식재료를 한 봉지 가득 담아
숙소로 돌아왔다.


장바구니 안에는
채소와 과일뿐 아니라
오늘 하루의 배움이 함께 들어 있었다.
말은 서툴렀지만,
몸으로는 분명히 익혔다.


이 시장이 허락하는 거리감과
이 도시가 요구하는 예의.


여행은 이렇게
한 번씩 우리를 민망하게 만들고,
그만큼 조금씩 자라게 한다.

그린마켓에서의 오늘은
기분 좋은 성장통이었다.


- 낭만봉지 -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올드타운 그린마켓)


작가의 이전글두 번째 여정의 시작,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