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흐리드 호수의 심장에 스며든 노을과 우리
오흐리드 올드타운 안쪽의 해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호수는 놀랍도록 맑았고,
그 가장자리에는 여행자를 유혹하듯
분위기 좋은 바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비치체어 대여료가
우리 돈으로 삼만 원쯤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잠시 망설였다.
의자 하나에 이 정도라니,
여행자의 계산기는 본능처럼 빠르게 작동했다.
하지만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햇살이 물결 위에서 부서지고,
바람은 호수의 숨결을 고스란히 실어 나른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에서 우리가 빌리는 것은 의자가 아니라,
이 풍경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해변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깎아지른 절벽 끝에 홀로 서 있는
'성 요한의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를 굽어보는 그 자태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의 끝에서
영원을 기다리는 고결한 파수꾼 같았다.
붉은 노을이 천천히 호수의 심장 속으로 잦아들 때,
오래된 벽돌은 황금빛으로 타오르며
대지와 하늘 사이에 가장 거룩한 경계선을 그려냈다.
말을 잃게 만드는 풍경 앞에서,
우리는 그저 서서 숨을 고를 뿐이었다.
물결이 빚어내는 낮은 소리,
윤슬이 건네는 따스한 빛의 파편들.
그 모든 것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을 어루만졌다.
오흐리드의 노을은 어디서 보아도 한 장의 그림이 된다.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는 붉은빛은
호수 위에 우리의 지난 세월을 투영했다.
망설였던 결정들, 견뎌야 했던 아픔,
그리고 끝내 여기까지 오게 만든 서로에 대한 신뢰.
우리는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그 위로 저녁의 온기가 층층이 쌓여갔다.
마치 이 여행이, 이 순간이,
힘든 선택을 해왔던 우리 삶에 건네는
늦은 보상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노을은 그렇게,
말없이 우리를 품어주고 있었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