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같은 색, 아내의 미소
타지에서 오래 살다 보면
외모에 대한 감각은 자연스레 무뎌진다.
아니, 무뎌진다기보다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한국에 있을 땐 한 달에 두 번은 미용실을 찾았다.
머리카락은 성실하게 자랐고,
나는 그 성실함을 부지런히 잘라냈다.
은퇴 후 해외살이를 시작하며
‘미용비까지 줄여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곧 머리카락을 기르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동남아의 뜨거운 나라에서는
머리를 묶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고,
유럽의 겨울에서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풀고 다녔다.
48년 인생,
처음 길러보는 머리였다.
불편함은 생각보다 많았다.
조금만 더워도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카락,
1분이면 끝나던 샴푸가 5분이 되고,
5분이면 끝나던 드라이가
집중하지 않으면 10분을 넘겼다.
가끔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아침마다 머리를 말리던 아내의 뒷모습,
“왜 이렇게 오래 걸려?”라며
핀잔을 주던 내 목소리.
머리카락이 길어지자
그때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내에게도 해외생활의 가장 큰 고민은 머리였다.
오랜 시간 염색을 미뤄오며
새치는 어느새 반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내는 유전적으로 새치가 많다.
한국에 있을 때도
뿌리 염색을 자주 해야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자신의 사진을 오래 바라보다가
작게 말했다.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나는 바로 알았다.
그 말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내는 염색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유럽의 로컬 미용실 문을 연다는 건
그녀에게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던 아내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구글맵을 넘기고,
미용실 하나를 고른 뒤
왓츠앱으로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검소하고 철저한 아내가
미용실을 검색한다는 건
정말 큰 결심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며칠 뒤,
우리는 그 미용실로 향하고 있었다.
미용실은 동네 주민들로 북적였다.
한국의 동네 미용실처럼
생활의 일부 같은 공간이었다.
원장님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영어가 되는 직원이 중간에서 도왔지만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소통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배워온 상태였다.
짧은 영어, 번역기,
그리고 최대한 많은 표정과 손짓.
작업은 무려 6시간.
탈색과 염색을 함께 하는 과정이었다.
가능한 일인지
아내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이미 탈색은 시작되고 있었다.
약 4시간이 지났을 즈음,
탈색이 끝났고 염색이 이어졌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던 나를 보고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커피를 내주셨다.
“Where are you from?”
프랑스에서 왔다는 그분은
오흐리드에 오래 머문 분이었다.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마지막 손질이 끝났을 때,
아내의 헤어 컬러를 보고 놀랐다.
현지인 같은 색이었다.
자연스럽고, 과하지 않고,
이 도시의 햇빛과 잘 어울리는 색.
이게 기술이라는 걸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미용실 원장님은
오흐리드에서 꽤 유명한 분이었다.
가격은 한국의 삼분의 일.
아내의 굳은 의지,
폭풍 검색과 용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의 표정이 달라졌다.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조용히 웃는 얼굴.
앞으로 찍힐 사진들을 상상해서인지,
조금은 젊어진 느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아내가 웃는 모습이 좋았다.
헤어스타일보다
그 미소가 더 값졌다.
로컬 미용실에서
우리는 머리카락보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다듬고 나왔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