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이 처음 뛰었던 경기장

축구는 아버지에게서 시작되었다

by 낭만봉지 김봉석

유럽의 오후,

월드컵 소식을 듣다가

나는 문득

아버지가 뛰던 학교 운동장에 서 있었다.


타지의 오후, 월드컵 소식 하나

유럽이라는 타지에서
유튜브는 하루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나른한 오후를 달래듯
오늘도 무심코 화면을 켰다.


2026년 월드컵 소식이 흘러나온다.
3개국 동시 개최,
32강 확대,
조 3위도 본선 진출 가능.


정보는 차분했고
해설은 친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먼저 반응했다.


축구라는 단어가
나에게 왜 여전히 설렘으로 남아 있는지,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청년기의 함성, 처음 느낀 전율

시간은 거꾸로 흘러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돌아간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서정원의 동점골,
홍명보의 장거리 슛.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스포츠가 주는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가
다시 뛰는 느낌.


그 뒤로 2002년.
성인이 되어 거리로 나갔다.


붉은 물결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4강이라는 기적을 함께했다.


잠을 설칠 만큼
축구는 뜨거웠고
도시는 축제였다.


이후 그 열기를 품고

대학 축구동아리에서 공을 찼다.


경기를 뛰며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멈출 수 없다는 것,

한 발 먼저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집중이 필요한지,

작은 체구로도

끝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

(한양대학교 산업공학 축구 동아리)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정말로
축구라는 종목에
반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기억은
더 오래된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이전일지도 모를 시간.


160cm의 작은 거인

당시 교사였던 아버지는
연예인 초청 친선 축구 경기에
선수로 나가셨다.


160cm 남짓한 작은 체구.

하지만
볼을 잡은 아버지는 달랐다.


날렵했고,
파이팅이 넘쳤고,
그라운드를 가르는 움직임은
어린 내 눈에는
로보트 태권V 같았다.


거대했고,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히어로였다.


운동장의 먼지바람,
관중의 함성,
그 소음과 열기 속에서
아버지는 유난히 빛나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한 이유는
아마 그때의 울림이
심장에 그대로 박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공기의 떨림,
함성의 파도,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보던 내 시선.


축구가 좋았던 게 아니라,
그 순간의 아버지가
너무나 멋있었던 것이다.


사진 속에 남은 잔상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무심코 펼친 앨범에서

그날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에는
연예인들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누구보다
아버지가 빛났다.


사진 속 연예인보다 더 멋졌고,
내 기억 속 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추억 속에서 뵈었다.

(한영고등학교 연예인 초청 친선 축구경기)

다시, 월드컵을 보다

2026년 월드컵.

나는 이제
젊은 응원단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 소식 앞에서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이유를
이제는 안다.


내 심장이 처음 뛰었던 경기장은
월드컵이 아니라,


아버지가 뛰던
그 작은 학교 운동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그날의 잔상은
아직도
내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


월드컵을 볼 때마다
나는 축구보다 먼저
아버지를 떠올린다.


- 낭만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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