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의 끝에서, 맥주 한 잔의 행복
새벽부터 천둥과 번개가 창문을 거칠게 때렸다.
비바람은 테라스의 물건들 위치를 바꾸고 있었고
방충망은 계속 창문을 열라는 듯 요란하게 흔들렸다.
“아… 여보, 큰일이네.”
“오늘 크로아티아 갈 수 있을까?”
하필 오늘이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원래 계획은 1월 6일, 코토르에서 출발하는 일정.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머피의 법칙을 만났다.
정교회 크리스마스.
그날엔 버스가 없었다.
6일도, 7일도 모두 운행 중단.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5일이나 8일뿐이었다.
이미 예약한 숙소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꽤 오래 고민을 이어갔다.
결국 선택한 날짜는 1월 5일.
비용을 아끼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태풍급 날씨 앞에서 그 선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소 인내심이 강한 아내도
이 날씨에는 겁이 난 듯 보였다.
버스비를 포기하고 날짜를 바꿔야 할지
잠시 말수가 줄어든 얼굴이었다.
나는 버스 운행 정보와 이동 후기,
날씨 예보까지 하나하나 다시 살폈다.
나름의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그냥, 가자.’
숙소를 나서며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
다행히 호스트가 차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짧은 이동조차 고맙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비바람이 한결 잦아들었다.
지갑에서 미리 준비해 둔 종이 티켓을 꺼냈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에선 온라인 티켓이 익숙했지만
몬테네그로는 반드시 종이 티켓이 필요했다.
터미널 인쇄 비용은 1인당 1유로.
여행이 쌓아준 작은 생활의 요령이었다.
10시 10분 출발 버스는
날씨 탓인지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캐리어 하나당 2유로를 내고 자리에 앉았다.
정오로 향하는 시간이었지만
창밖은 여전히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다행히 좌석에 여유가 있어
짐을 옆자리에 두고 몸을 풀 수 있었다.
출발 30분 전 먹은 멀미약 덕분인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차창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
약 한 시간 반 뒤,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출국 심사는 의외로 빠르게 끝났지만
입국 심사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궂은 날씨와 느린 전산,
비쉥겐에서 쉥겐으로 넘어가는 길.
괜히 까다로운가 싶었지만
정작 여권만 보여주고 통과했다.
아마도 이 모든 지연은
날씨가 만든 작은 혼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코토르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은
아드리아해를 품은 절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늘의 바다는
마치 종말 직전처럼 거칠었다.
강한 바람, 짙은 어둠,
높게 부서지는 파도.
풍경은 위로보다 긴장에 가까웠다.
국경을 지나 약 40분을 더 달린 끝에
우리는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도시는 여전히 비바람 속에 있었다.
다행히 호스트의 배려로
숙소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를 수 있었다.
식료품을 사고, 차로 편히 이동했다.
호스트가 떠난 뒤
집 안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웃었다.
‘도착했다.’
‘고생했어.’
그날의 저녁은 마트에서 산 목살이었다.
지글거리는 고기와 맥주를 천천히 넘기며
긴 하루를 충분히 위로해 주었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날은 완성되었다.
행복은 늘
대단한 풍경 속에 있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마치고
마주 앉아 웃을 수 있는 순간,
그 안도감은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진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