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바램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밤.
‘탁탁탁’
손끝과 키보드가 만날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식탁 위를 천천히 울린다.
저녁이면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각자의 화면을 바라본다.
여행 블로그, 쇼츠, 인스타,
그리고 브런치에 올릴 글까지.
오늘도 그렇게 아내를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
결혼 초기에 아내는 내게 말했다.
“난 모든 걸 정리하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
“같이 일 그만두고 떠날까?”
“갔다 오면,
어떤 일이든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의 나는
촉망받는 보안 컨설턴트였고,
커리어는 빠르게 상승 중이었다.
조금 더 가면
임원이라는 자리도
현실적인 목표로 보이던 시기였다.
아내 역시
미래가 보장된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바램은
세상을 아직 모르는 순한 생각처럼 느껴졌다.
잠깐의 충돌,
곧 사라질 감정이라
쉽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넘김이 쌓일수록
아내의 바램은
불만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결혼 3년 차 무렵부터
그 불만은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흘러나왔다.
사소한 말에도 다투게 되었고
서로의 마음에는
작은 균열이 늘어갔다.
서로가 바라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
그걸 부드럽게 표현한다면
성격 차이라고 해야 하나...
결혼 4년 차,
아내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 안에는
자신의 성향에 대한 미안함과
바꿔 보려는
조심스러운 의지가 담겨 있었다.
편지를 읽으며
나는 과거 아내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 바램들은 불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사랑의 표현이며 기댐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래,
내가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잠시 잊고 있었구나.'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아내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도,
왜 나와 결혼을 하려고 했는지도,
그것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아내의 바램을 하나씩 떠올리며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준비를 마친 우리는,
40대에 이른 은퇴를 하고
아내의 바램대로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그리고 여행 속에서
나는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내를
생각보다 훨씬 몰랐다는 사실을.
아내는 어느 날
여행 블로그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SNS에 부정적이던 사람이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이웃이 늘었고,
광고도 붙었다.
내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면
분명 포상을 줬을 성과였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내의 바램대로 일을 그만두고
조금 일찍 시작했으면
우리는 더 생기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아내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금의 한 달 살기를
마음속에 그려두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식탁에 앉아 글을 쓰는 동안
아내의 얼굴에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미세한 근육들이 움직인다.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
그 변화는 더 선명하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아내는 지금,
여행블로그를 쓰면서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재능을 알게 된 것.
늦었지만,
아직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아내의 '바램'이라는 단어는
내게 늘 '걱정'이라는 단어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 하나를 내려놓자
그 자리에
기대와 행복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조금씩 덜어내고
조금씩 채워갈 것이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