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과 전쟁을 이겨낸 축제의 서막, 성 블라호에서 포라트 항구까지
올드타운의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두브로브니크의 공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에는 깃발이 걸리고, 상점 앞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2월에 있을 성 블라호 축제를 앞둔 도시였다. 성 블라호 축제(Festa Svetog Vlaha)는 두브로브니크에서 매년 2월 2일, 3일 열리는 공동체 전통 축제이다. 성블라호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전설에 따르면 972년경 그가 도시를 베네치아의 공격에서 미리 알려 구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그때부터 매년 그를 기리기 위한 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는 1000년 이상 지속된 전통이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스트라둔(Stradun)을 따라 걷는 동안 축제는 무대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깃발의 각도를 바로 잡고, 누군가는 돌바닥 보수 공사를 한다. 이 모든 움직임이 공연의 리허설처럼 보였다.
스타라둔 끝에서 마주한 성 블라호 성당 앞에서 우린 멈춰 섰다.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비둘기들은 광장을 점령한 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성당 앞과 성벽 곳곳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그의 조각상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신앙이라기보다, 오래된 약속에 가깝다.
지금의 성 블라호 성당은 18세기 초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 건축물이다. 1706년,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가 화재로 소실된 뒤 재건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성당 역시 1667년 대지진 이후의 도시 재건 흐름 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두브로브니크의 바로크 건축은 화려함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성 블라호 성당의 단정한 외관은 이 도시가 택한 생존의 미학처럼 보인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제단 위 은빛 성 블라호 상이다. 이 조각은 지진 이전의 구시가지를 손에 들고 있어, 재난 이전의 도시 모습을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 기록물로 여겨진다. 관광객에게는 하나의 유물일지 모르지만, 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그 손안에 담겨 있다.
골목 끝에서 마주한 예수회 계단(Jesuit Stairs)을 천천히 오르자,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Church of St. Ignatius)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계단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수치의 행진’ 장면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관광객이 그 장면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지만, 막상 계단을 오르다 보면 촬영지라는 사실은 그 웅장함과 고요 속에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이 교회가 세워진 배경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아픈 기억이 있다. 1667년 대지진은 도시의 상당 부분을 무너뜨렸고, 이후의 건축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에 가까웠다.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는 그 재건의 흐름 속에서 18세기 초 완공된 바로크 건축물이다. 이탈리아 예수회 건축가 안드레아 포초의 설계는 로마의 장엄함을 닮았지만, 규모와 분위기는 이 도시의 성정처럼 절제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크 특유의 장식과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공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다. 성 이그나티우스의 생애를 그린 천장화와 벽화는 ‘신앙의 위대함’을 과시하기보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시간을 조용히 보여준다. 관광객의 웅성거림이 잠시 멎는 순간, 이 교회는 박물관이 아니라 여전히 숨 쉬는 신앙의 장소임을 느끼게 한다.
걷다 보니 올드타운 성벽 바로 아래,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포라트 두브로브니크(Porat Dubrovnik)에 도착했다. 이곳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면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장소다. 크루즈 터미널도, 엽서에 실릴 만큼 인상적인 풍경도 없다. 하지만 이 항구는 두브로브니크의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자리다.
포라트는 ‘관광지 항구’라기보다 ‘생활 항구’에 가깝다. 이른 아침이면 작은 배들이 조용히 들어오고, 어부들은 별다른 인사 없이 그날의 바다를 내려놓는다.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식재료와 섬으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성벽 안으로 스며드는 물자의 흐름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바로 이 항구다.
포라트에 서면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보다 훨씬 낮고, 사람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한 인상이다. 바다는 성벽을 위협하지 않고, 성벽은 바다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항구를 통해 들어온 수많은 배와 사람들 덕분에 이 도시는 ‘닫힌 요새’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열린 도시’로 남아 있었다.
포라트는 늘 경계의 공간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섬으로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여행자에게는 하루 일정의 시작점이지만, 현지인에게는 일상의 반복이다. 이 차이가 만들어내는 온도 차가 항구의 공기를 묘하게 만든다. 설렘과 무심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포라트는 그런 장소다.
정문에서 시작해 성 블라호 성당을 지나,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와 포라트 항구에 이르기까지. 이 산책은 명소를 잇는 동선이 아니라, 도시가 자신을 드러내는 순서였다. 축제를 준비하는 두브로브니크는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2월의 축제를 기다리며 조용히 그 길 위를 걸어가야겠다.
- 낭만봉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