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간다
울타리란,
풀과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소박한 경계다.
단단한 담장처럼 외벽을 세우진 않지만,
바람이 스며드는 틈을 그대로 두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어딘가 따뜻한 마음을 닮아 있다.
그 울타리는 누구를 막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을 감싸고,
넘어서면 위험한 경계를 알려주며,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믿음 같은 것을 품고 있다.
마치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린다” 하고 속삭이는 존재처럼.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마다 울타리가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을 세우며 우리는 살아간다.
때로는 따뜻한 거리감으로,
때로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차가운 선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깊은 울타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몸으로 둘러쳐진 하나의 “생울(生垣)”이었다.
흙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그들은 제 자리를 지켰고,
우리가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걸음마를 떼던 날,
작은 발이 조금만 흔들려도 뒤에서 살짝 받쳐주고,
넘어지기 직전이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 바람을 마주하며 우리 뒤편에서 조용히 넓어지는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울타리는 늘 살아 있었다.
숨 쉬고, 우리를 보고, 때로 우리보다 먼저 아프고,
그러면서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 우리 자리를 지켜주었다.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그 생울이 더 이상 부모만의 것이 아님을.
기댔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낯설지만, 두렵지만,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순환.
누군가의 뒤를 지켜주고,
서툰 걸음을 받아주고,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아, 이건 내가 어릴 때 받았던 그 마음이구나.”
생울은 그렇게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한 세대가 치고 간 바람은
다음 세대를 감싸는 온기가 되고,
지난 시절의 울타리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그늘이 된다.
울타리는 경계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울 속에서 자라
다시 누군가의 생울이 되어가는 존재다.
그 이어짐이야말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단단한 사랑의 형태인지 모른다.
그렇게 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간다.
나의 생울(生垣)은 이어진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