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천천히 알아간다는 것
2008년, 스물여섯의 그녀는 내게로 왔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린 나이였다.
금융권 대기업에서 일하며,
사람들에게 신뢰와 호감을 동시에 얻던 그 나이…
분명 더 좋은 선택지가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와의 삶을 선택했다.
두 해의 연애 동안,
나는 그녀의 깊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조용하지만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말보다 생각이 앞서고,
감정보다 현실을 먼저 읽어내는 사람.
심지가 곧아 차가워 보이지만,
말없이 따뜻한 성정의 사람.
내 성향과는 다르게 내성적이면서
이성적인 그녀를 보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마치 오래된 고목 한 그루가
숲 한가운데 묵묵히 서 있는 모습처럼.
깊은 뿌리로 제자리를 지키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늘과 쉼을 내어주는 그런 존재.
나는 그 아래에서 안심하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 초기는 그 고요함처럼 순탄치 않았다.
서툼과 오해가 자주 엇갈렸고,
말들은 쉽게 둔탁해졌다.
때때로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다치기도 했지만,
나는 조금 더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그녀는 단단해 보일 뿐
사실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처음에는 연민으로,
지금은 자연스레 보호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해버렸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은 사랑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에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존재라는 걸..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우리는 계획대로 조기 은퇴를 했고,
지금은 전 세계를 떠돌며
보헤미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자유로움 뒤에 도사린
생활비 걱정, 자금 걱정, 식사 걱정…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 혼자만의 불안이었던 것도
이제는 알겠다.
요즘의 그녀는 예전과 다르다.
노트북을 바라보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작은 주방에서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며,
장을 보며 숫자를 세심하게 가늠하는 모습은,
그녀가 한 사람의 아내이자 여행자이자 삶의 동반자로
조용히 성장해 온 시간들의 증거처럼 보인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우리 서로 존댓말 써볼까?”
“말투도 조금 고쳐보고 싶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은퇴 후 무료할까 두려워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내게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오직 그녀만이 나를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와 함께라면,
앞으로의 여정도 아마 지금처럼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때때로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오늘도 그녀 뒤에 묵묵히 서서 그렇게 생각한다.
부부는 이해하기에,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