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대신 매진(邁進)

[1장] 교사가 되고 싶어!

by 주봉준

“주 선생님, 승진할 생각 없으세요?

“네, 전 별로 생각이 없어요.”

“아, 그럼 장학사 시험을 준비하시나요?”

“아뇨. 그것도 안 해요.”

“왜요? 선생님 같은 사람이 교장이나 장학사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말이죠...”


이제 교직 경력이 15년 즈음되고, 남자 교사이다 보니 매년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제가 학교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승진이나 전직을 권유하는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매번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승진을 포기한 첫 번째 이유는 가족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교직 경력 5년 차 때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연구학교에서 근무하며, 승진을 준비하는 유능한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했습니다. 대부분 막 결혼을 하거나, 아기들이 있는 아빠들이었죠. 선배들은 능력이 뛰어나서 학교에서 추진하는 연구 과제들을 척척 해내었습니다. 저는 막내로서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교장 선생님 덕분에 늦은 밤까지 배구와 회식을 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럼에도 선배들은 시간을 쪼개 승진 준비를 하였습니다. 육상 대회 지도, 박람회 자료 제작, 발명대회 보고서 작성, 수업연구대회까지 승진 점수를 얻기 위해서 수많은 것을 하는 걸 보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는 당장 학급의 일만으로도 벅찬데 플러스알파까지 하는 선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선배들도 완벽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지만 가족의 희생이 필요했고, 항상 미안해하였습니다. 초등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것을 속상해하였습니다. 집안일도 하고, 아이와도 즐겁게 놀아주고 싶지만, 집에 가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체력도 부족하여 어쩔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아내에게 “혹시 내가 승진 준비 때문에 가정에 소홀하게 된다면 희생해 줄 수 있어?”라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의 아내는 단호하게 “NO!”라고 답하더군요. 물론 아내의 협조가 어렵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승진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승진을 접은 두 번째 이유는 갈등입니다. 교장・교감의 자리는 한정적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있던 학교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화기애애하고 사이가 좋았던 선생님들이 업무 분장이나 다면 평가 기준을 정할 때가 되면 날카로워졌습니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학년이나 업무를 선점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갈등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현재 승진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연구 실적을 쌓기 위해 논문을 작성하거나 연구 대회를 준비하지만 이 과정이 실제 교육현장과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연구 실적과 가산점을 얻기 위해 추가적인 업무에 시달리고, 이로 인해 학생 지도나 수업 준비에 소홀해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보면 승진 점수를 쌓기 위해서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학급 운영이나 수업에도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승진 제도가 과연 교육 리더십, 교육 현장의 전문성 등을 갖춘 교사를 뽑는데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되려 교육에 대한 비전이나 리더십 능력이 평가되지 않고, 단순히 연수나 연구 실적으로 승진이 결정되는 경향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사로서의 목표를 위해 승진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학생들과 투닥거리며 수업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특히 새로운 수업을 구상하면서 ‘이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고 느껴지는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마음처럼 설렙니다. 그리고 준비한 수업이 잘 진행되어서 ‘선생님, 오늘 재미있었어요.’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만족감은 저에게 희열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에 대한 열정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자.’는 것을 교사로서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관리자나 장학사가 되면 지금처럼 학급을 맡거나 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굳이 승진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장이나 교감이 되어 행정 업무만 하게 되는 제 모습을 그려보니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이른 시기에 교사로서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였습니다. 승진의 길을 접었더니 더 많은 길이 열렸습니다. 교육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가정에 충실할 수 있어서 지금처럼 육아 휴직도 부담 없이 할 수 있으며, 관리자의 눈치를 덜 신경 쓰면서 학급 경영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업무나 학년을 양보하면서 선생님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여전히 주위에는 자신의 굳은 확신 없이 주변인들에 의해 등 떠밀려 승진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늦은 시간까지 각종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내가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선생님도 만나보았습니다. 유능한 선생님들이 온전히 교육에 역량을 쏟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승진 제도가 개선되어, 교육 행정에 뜻이 있는 유능한 선생님들은 관리자로서 역할을 맡고, 교육에 전념하고 싶은 교사들은 수업과 학급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