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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봉준 Dec 08. 2024

투명한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요

[3장] 잘 도와주고 싶어!

  “어머니, ○○이가 어휘력이 낮아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집에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이고, 선생님. 그게 쉬운 줄 아세요? 선생님이 아직 애를 안 키워봐서 모르시나 보네요. 부모가 아무리 책 읽으라고 해도 애들은 절대 안 읽어요.”     


  젊은 선생님들은 학부모에게 “아직 애를 안 키워봐서 모를 거다”거나 “내가 우리 아이를 잘 아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특히 남교사인 저는 총각 시절에 이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지금 육아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돌아보면, 학부모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이해는 됩니다. 아이를 키워보기 전과 후는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학부모에게 드린 조언이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말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생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학부모의 저에 대한 신뢰감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제가 학부모보다 학생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가정에서의 모습과 학교에서의 모습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급 밴드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밴드 앱이 출시되자마자, 저는 학급 홈페이지를 대체하여 활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경남교육정보원에서 운영하는 학급 홈페이지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었고, 이를 적극 권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학급 밴드를 운영한다고 하니 여러 선생님들이 말리셨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교장 선생님, 기존의 학급 홈페이지는 접속도 어렵고, 사진을 올리는 과정도 복잡합니다. 네이버 밴드를 학급 홈페이지로 활용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주 선생님, 한 번 해보세요. 해보고 잘 안되면 바꾸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세요. 잘 운영되면 다른 선생님들께도 꼭 소개해주어야 합니다.”


[그림 1] 학급 밴드(예시)


  학급 밴드는 생각보다 훨씬 편리했습니다. 휴대폰으로 학생들의 학습 활동이나 결과물을 찍어서 즉시 업로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과 학부모 간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학부모에게 전달할 내용도 쉽게 안내할 수 있었고, 저와 학생들을 응원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주변의 선생님들에게 학급 밴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밴드뿐만 아니라 학급 홈페이지를 대신할 다양한 앱(클래스123, 구글 클래스룸, 위두랑 등)이 생겨났습니다. 이제는 기능과 접근성이 뛰어난 앱을 활용하여 학급을 잘 운영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급 밴드를 통해 저는 학부모에게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칠판에 판서한 글씨가 삐뚤어져 있거나 학생의 작품이 부족하여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기에 부족한 점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학급일지를 활용한 역량 그래프를 가정에 통지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역량 그래프에는 학생이 학교에서 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학교 생활을 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학생의 장점을 칭찬하고, 약점은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안내했습니다.     


[그림 2] 역량 그래프(학생 예시)


  [그림 2]를 보면, 이 학생은 모둠 수업에서 협동심과 리더십을 발휘하였으며, 대화 예절도 바르고 수업 참여 태도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발표에 소극적이며, 영어 학습이 부족하고 일기 과제를 해오지 않아 혼이 났다는 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적을 때면 “혹시 학부모가 불쾌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그런 말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학부모와의 상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 학년을 맡으면 며칠 안에 모든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일 년 동안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이는 제가 먼저 다가가 학부모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학부모 상담 주간에도 저만의 상담 방법이 생겼습니다. 1학기에는 교사가 학부모에게 학생에 대한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상담하고, 2학기에는 반대로 학부모에게서 질문을 받아 상담을 진행합니다. 상담 주간에는 학생의 학업, 교우 관계, 건강 등을 주제로 상담을 하며, 학급일지와 역량 그래프를 꺼내어 상담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니 신뢰감도 높아졌습니다.     


  “어머니, 2학기 학부모 상담 주간에는 제가 학생에 대해서 파악한 내용에 대해 말씀드릴 테니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시면 됩니다. 먼저 ○○이는 학급일지를 보니까 문장력이 좋아서 글도 잘 쓰고, 영어 수업 시간에 참여하는 태도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수학 교과에서 분수의 덧셈과 뺄셈에 관한 문제를 푸는 것을 어려워했네요.”

  “집에서 학습지를 푸는데도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3학년 때 배운 분수의 개념에 대해 알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보충 학습 시간에 한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의 관계는 좀 좋아졌나요?”

  “작년에 친구들과 자주 다투어서 걱정이 많으셨죠? 제가 쉬는 시간에 관찰해 보니까 대화 예절을 배우고 나서 친구들과 소통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예쁜 말을 쓰니까 다툴 일이 줄어든 것 같아요.”     


  상담 주간이 아니더라도 학부모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편입니다. 학생이 다치거나 친구와 다툼이 있거나, 수업 중 잘못된 태도로 혼이 난 경우에도 학부모에게 연락을 합니다. 나중에 학생을 통해 학부모가 내용을 전달받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직접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합니다. 상담을 마칠 때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저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가까워지는 것이 자녀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 주셔도 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


  학생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학교와 가정이 함께 목소리를 내어 학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해야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학부모의 도움을 받기 위해 저는 신뢰감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급의 문을 열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아동 학대, 교권 침해 등으로 고통받는 선생님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슬프고 속상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고, 앞으로 더 큰 일에 휘말릴까 봐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큰 목표를 앞에 두고 멀리서 바라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뢰라는 방패로 저를 지키고자 합니다. 선생님들이 마음껏 학생의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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