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잘 도와주고 싶어!
“선생님, 저 오늘 점심시간에 상담 신청해도 돼요?”
“오늘은 ○○이랑 상담하기로 했었는데, 어쩌지? 너는 내일 상담해줄게.”
“어? 내일은 제가 상담 신청하려고 했는데요?”
“그럼 너는 내일 아침에 상담해 줄게. 휴~, 선생님이 너희랑 상담하느라 쉴 틈이 없네.”
분명히 예전보다 수업 준비나 업무 처리 능력은 향상되었는데도, 학교 생활은 여전히 바쁩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차 한잔의 여유를 느낄 틈 없이 상담 일정이 가득 차 있으니까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며칠 동안은 교실이 화목합니다. 새로운 선생님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학생들도 자신의 본성을 숨기지만, 그게 숨겨질 리가 없죠. 일주일쯤 지나면 마치 주머니 속 송곳처럼 하나둘 자기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교실 내 다툼과 문제도 점점 늘어납니다.
“여러분, 속상하거나 짜증 나는 일이 생겼다고 해서 친구에게 그 감정을 쏟아내면 안 돼요. 친구도 아직 어린이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그런 마음은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푸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이해해 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필요할 때 상담을 신청하세요.”
학기 초에는 상담 신청 학생이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친구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상대는 그보다 큰 감정으로 되받아치면서 상처를 주고받죠.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저는 이 학생들을 데리고 집단 상담과 개별 상담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몇 차례 상담을 거치고 나면 점차 상담 신청 학생들이 늘어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마음이 풀리곤 하죠. 안정감을 느끼고, 내 편이 생긴 듯한 위로를 받습니다. 한 명이 상담이 좋았다고 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또 상담을 신청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제 여유 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선생님, 남자애들 때문에 진짜 짜증 나요.”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 쉬는 시간에 공기놀이를 하는데 남자 애들이 너무 시끄럽게 하잖아요.”
“뭘 하길래 그렇게 시끄러웠을까?”
“포켓몬스터 놀이를 하나 봐요. ‘피카츄! 백만 볼트!’ 막 이러면서 지들끼리 소리치니까 공기놀이에 집중이 안 돼요.”
“그렇구나. 그럼 선생님이 남자애들한테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얘기해 볼게.”
“네, 감사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 짜증이 많습니다. 정확하게는 감정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데 서툴러서 자신의 기분을 ‘짜증’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짜증이 해소되곤 합니다. 감정을 들어주기만 해도 짜증이 많이 가라앉더군요. 학생들의 말이 어이가 없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선생님은 너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어.”라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상담의 효과는 큽니다.
“얘들아, 아까 왜 싸웠니? 선생님은 너희를 말리느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한 명씩 이야기를 좀 해줄래? ○○이부터 얘기해 볼까?”
“있잖아요. △△이가 제 필통을 발로 찼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이가 말할 차례야. △△이는 조금 기다려줘. ○○아,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래?”
“아까 과학 시간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는 △△이가 제 필통을 차는 걸 봤어요. 필통이 열리면서 연필이랑 지우개가 다 날아갔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따졌어요.”
“아, 그랬구나. 친구가 네 필통을 차는 걸 보고 화가 났구나. 그럼 △△이도 얘기해 볼래?”
“그런데요, 선생님. 저는 일부러 찬 게 아니었어요. 친구랑 술래잡기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필통을 차게 된 거였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래도 친구의 물건을 찼으니까 사과는 했니?”
“아니요. 사과할 시간도 없이 ○○이가 달려와서 막 따지길래 당황해서 못했어요.”
“그럼 지금이라도 사과할 마음이 있니?”
“네, ○○아. 니 필통을 차서 미안했어.”
“나도 미안해. 일부러 그런 줄 알았어.”
교실에서 일어나는 친구 사이의 갈등은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상담을 통해 이런 오해를 풀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면 갈등이 쉽게 해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 사진을 보니까 우리 애 자리가 뒤쪽이더라고요. 키도 작고 눈도 안 좋은데 괜찮을까요?”
“아, ◇◇이 자리가 제일 뒤쪽이라서 놀라셨나 보네요.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반은 매달 자리를 바꾸는데 ◇◇이가 그 자리를 직접 선택했답니다. 앞자리가 비어있는데도요.”
“정말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근처에 있어서 그랬을 거예요. 혹시 ◇◇이가 칠판이 잘 안 보여서 걱정되신다면 제가 글씨를 좀 더 크게 써볼게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또 자리를 바꿀 거니까 그땐 앞자리에 앉도록 권유를 해보겠습니다.”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는 교사들을 악성 민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학교 내 학교장 직속 ‘민원대응팀’을 마련하여 교사 대신 민원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민원과 상담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부모의 상담은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 생활을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학부모와의 모든 연락을 민원으로 규정하면, 오히려 선생님과 학부모 간 소통이 단절될 우려가 있습니다. 민원은 민원대로 적절히 대응하고 상담은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가끔 교사가 일방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처분을 내리기도 합니다. 마치 판사처럼 말이죠. 하지만 학교는 법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담을 통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험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어지는 상담. 학생들이 잘 변하지 않고 매번 비슷한 일로 상담을 하면서 답답할 때도 많지만, 오늘도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줍니다. 상담은 끝없이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같지만, 회전목마를 타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교사의 보람이기에 오늘도 열심히 상담이란 회전목마를 돌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