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앞 비말 확산자들을 보며 생각한 변희수
이태원 지하철역 해밀턴 호텔쪽 입구로 나올때마다 이 시국에도 기타치며 찬송가를 부르면서 "주 예수 영접"를 부르는 5명이상의 무리를 거의 매주 금토요일에 만나게 된다.
열심히 비말을 퍼뜨리는 그분들 옆을 피해 지나가면서 경찰에 신고할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으나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선택과 행동도 존중하련다. 어느 정도 공중보건, 심지에 매일 출퇴근하는 나의 보건에도 위험을 주고는 있으나 그들의 선택도 존중할까 한다.
지하철 역앞에서 종교적 신념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아주 적으나마 위협을 주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한 사람이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신념과 선택때문에 생을 달리했다.
변희수란 젊은이가 자신의 선택으로 성정체성을 바꾼 것이 누구에게도 실질적인 피해를 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의 인식수준에선 지하철 역앞에서 소음과 비말을 퍼뜨리는 이들보다는 확실히 피해가능성이 적다.
그럼에도 그 젊은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한 선택마저 존중받지 못해 선택이 침해되고 결국 그의 삶이 사라지고 말았다. 매일 우리는 우리의 공간이나 공공의 장소를 밀고 들어와 벌어지는 많은 신념에 찬 행동들은 용인하면서도 왜 변희수란 한 개인이 다른사람에게 피해 안 주는 행위마저 용인 못 했을까?
물론 변희수란 사람을 보는 것 만으로도 도덕적 위협과 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치면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혈압이 솟구쳐 실질적으로 평균수명이 감소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공공적 강요적 위협성이 성정체성을 바꾼 어떤 청년의 개인적 선택보다 더 위협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태원 지하철 역앞의 '비말 확산자'들을 용인하는 것처럼 광화문의 퀴어축제도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는 앞으로도 변희수 같은 이들의 선택을 침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