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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Feb 25. 2021

백신과 아나필락시스 그리고 냉면

첫 접종 시작 즈음 알러지성 쇼크에 대한 기억들


드디어 내일 백신접종이 시작이다. 물론 나 같은 일반인들에겐 여름이후에 순서가 오겠지만 그래도 다른나라보다 늦지 않게 집단면역은 형성될 것 같다. 


백신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아나필락시스 즉 알러지로 인한 쇼크라고 한다. 근데...사실 나는 이 아나필락시스로 보이는 증상을 2번 겪은 적이 있다. 백신 때문은 아니고 다 '냉면'때문이었다.


혹시 이런 증상을 겪은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이 경험을 얘기해보려 한다.


처음은 2003년엔가 여름휴가 때였다. 사건기자시절이었는데 정말 바쁘고 스트레스 만땅이던 3년차에 여름휴가를 받자 와이프와 괌으로 놀러가게 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답답했던 속을 풀고 싶었는지 시원한게 먹고 싶어서 물냉면을 먹고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열이 나면서 가슴이 다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떴는데 그때쯤엔  몸전체가 특히 얼굴이 매우 가렵기 시작했다. 


“나 좀 이상하지 않아?”하면서 와이프를 쳐다보니 와이프가 내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거울을 보니 아래 사진과 같이 눈덩이가 밤탱이가 된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숨도 꽤 가파졌다. 그렇게 되자 스튜디어디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사무장을 불렀고 곧이어 기내방송이 시작됐다. 


“기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기내에 계신 의사선생님을 찾습니다.”


여름휴가를 가던 어떤 의사가족이 비즈니스석에 있었고 나와 와이프는 내 치료를 위해 그 옆자리로 이송됐다. 근데 의사선생님은 대충 나를 보고 내 눈을 뒤집어보더니 “한 시간 쯤 후엔 괜찮아질 것”이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귀찮다는 듯이 앉아버렸다. 


저렇게 쿨한 의사분들의 말을 이미 많이 듣고 있었지만 그때는 정말 화가 났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30분쯤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내식마저 잘 먹을 정도였다. 너무 정상으로 돌아와 걱정(?)했는데 다시 제자리인 일반석으로 가라고는 하지를 않아서 기내식은 그냥 좋은 것을 먹었고 편한 자리에 앉아 휴가지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때는 내 증상의 원인이 뭔지 잘 몰랐다. 식중독아닌가 의심했는데 사실 복통은 없어서 이상하긴 했고...그러다가 몇 년 뒤 2006년에 다시 일이 생겼는데 그 장소는 북한 금강산이었다. 그때는 내가 이른바 ‘공화국의 적’이 된 그 문제의 이산가족 상봉취재 전이었는데...


어쨌든 그때는 통일부 기자들은 금강산은 거의 매달 가던 시절이었고 나도 북한 담당이어서 금강산의 겨울을 주제로 한 그냥 흔한 일상적 취재를 하러갔고 그 취재를 마치고 나서 점심을 하러 옥류관 금강산분점에 가서 냉면을 한그릇 먹었다. 근데 먹을 때부터 약간 속이 쓰린 느낌은 있었는데 다 먹고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또 얼굴에서 열이 나고 눈두덩이 무거워졌다. 그러자 또 옆에 있던 카메라기자 후배가 또 내 얼굴을 보며 소리쳤고...결국 그 후배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현대그룹이 운영하던 작은 병원으로 갔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은 몇 년 전 비행기 안에서 본 의사처럼 심드렁하게 나를 보시더니 엉덩이를 내리라 하더니 항히스타민이던가 하는 주사를 놓으셨다. 그러자 역시 30분 쯤 뒤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나는 내 어린시절부터의 경험을 돌이켜봤다. 생각해보니 가끔 아버지가 지나가는 메밀묵 장수에게 사서 드시던 메밀묵. 그걸 나도 같이 먹을 때 입안이 따끔했던 적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회사 들어가서 비로소 제대로 된 을지로의 냉면집에 가서 정통 평양냉면을 먹을 때도 그렇게 속이 쓰린 적이 가끔 있던 기억이 났다. 메밀 알러지였던 것이다. 단 모든 메밀에 그런 건 아니었다. 


그 금강산 출장 뒤에 몇 달 뒤 평양에 출장을 갔는데 역시 필수 코스 옥류관에 가서 냉면을 먹게 됐다. 300그램짜리 시키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겁이 나서’ 냉면 100그램에 온면 100그램을 시켜 먹기 시작했는데 온면은 괜찮았는데 냉면을 먹기 시작하자 또 입이 아리기 시작했다. 얼른 젓가락을 놓고 알러지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뒤로는 나도 어느 정도 이 증상을 막는 요령을 터득했는데 일단 분식점, 고깃집 냉면은 전혀 문제가 없고 마포의 유명한 냉면집 같은 곳들도 괜찮았다. 다만 이른바 의정부 계열 냉면집들이나 우래옥 같이 메밀향 진한 곳의 냉면, 특히나 메밀농도가 아주 높을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냉면은 가끔 위험할 수 있는데 그것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거나 잠이 모자랄 때 같은 때가 아니면 입안이 조금 아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결국 강한 메밀농도와 면역력 저하가 결합할 때 강한 쇼크가 오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일본여행을 가서 유명한 소바집에서 면수를 마시다 정신이 번쩍 든 적이 두 번 정도 있긴 했지만 요령이 생겨 다 피할 수는 있었다. 오히려 약간 쓰린 느낌이 없으면 "이집 냉면에 메밀 적게 쓰는구나.."하는 자각을 얻을 정도였다.


어쨌건 나는 내 기회가 오면 백신을 맞을 것이다. 의사도 아닌 주제에 뭐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백신은 메밀이 아니기에...또 맞기 전에 잠 잘 자고 운동도 좀 해두면 될 것이고 혹시 눈이 붓기 시작해도 항히스타민제라든가 약들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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