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장미의 이름> 그리고 '조선구마사'
결국 '조선구마사'는 방영중단의 길로 가는 것 같다. 정말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 대신 분노를 준 드라마가 된 이유가 뭔지 잠시 생각해봤다.
지레짐작이지만 해외시장도 잡고 국내에서도 다양한 계층의 시청자도 잡겠다는 욕심이 부른 참사가 아닐까? 해품달이나 킹덤처럼 실명이 아닌 가상의 임금과 정확히 몇년도인지 모를 시간대를 설정했으면 환타지사극이란 점때문에 왜곡의 비판은 피했을 것이다. 백성들 처죽이는 태종대신 '탱종' 같은 가상의 임금을 설정했으면 됐을테니 ...물론 그러면 장년층은 낯설어서 안 보게 된다. 나만해도 가상의 인물이 나오는 사극은 청소년들 보는 환타지소설이지...하는 생각에 보지 않는지라 해품달도 안 봤고 킹덤도 처음에 안 보려했다.
그래도 그렇게 했으면 시청률에 손해는 있었겠지만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인데 해외와 젊은 시청자도 잡고 장년층도 잡겠다고 무리수를 쓴 게 원인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귀멸의 칼날'도 일본이 산업화와 제국주의로 쉼없이 성장하면서 동시에 봉건과 전통사회의 가치는 마구 없어지던 다이쇼시대의 혼란을 배경으로 깔지만 실존인물이나 실제 역사적 사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덕택에 미신 vs 과학, 전통 vs 산업화 , 희생 vs 이기적 욕망 등 다양한 대립구조를 살릴 수 있는 시대적 배경과 소품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역사적 배경과 충돌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기라는 전환기, 즉 권문세가와 불교로 대표되던 구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내부의 투쟁이 활발했던 시기에 난데없이 서역의 마귀와 서역신부라는 이상한 외부의 적을 끌어온 '조선구마사'는 설정부터 에러였다고 보여진다. 이 시기는 '육룡이 나르샤'처럼 구시대와 신시대 세력간의 격렬한 내부투쟁과 가치관 대립의 시대지 미지의 외부의 적과의 싸움은 어울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런 마구잡이 시대설정의 문제이전에 '존재하는 역사'를 소재로 가공하는 소설을 쓴 것부터가 모순이었다. 장미의 이름의 등장인물인 수도사들은 가공의 인물이거나 그저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언급 정도 있는 사람들이고 가장 중요한 살인사건들의 배경인 수도원도 그시대에 있을법하고 연상되는 곳은 있지만 '가공'의 수도원이었다. 대장금도 "내 병은 여의가 잘 안다"라고 중종이 말했다는 그 딱 한 문장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갖고 쓴 드라마였다. 딱 한문장의 기록...
그런데 태종과 세종은 딱 한문장의 역사공백이 아니라 역사의 기둥들인데 그것을 뽑아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소설을 쓴다는 건 이미 모순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젠 좀 마구잡이 역사로망은 없어지길 바란다. 장미의 이름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중고생들이 국사시간에 "어제 TV에서 나온 세종은 완전 깡패던데요. 태종은 미친 놈이던데요..." 뭐 이런 소리는 안 하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