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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Feb 22. 2020

'완벽한 방역', 무너진 영웅신화와 그 변주

성공할뻔한 코로나19 초기방역 목표의 비현실성 그리고 실패한 영웅신화는 어떻게 재건될 것인가?

2월 22일 밤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433명이다. 


신천지발 감염이 시작되고 20여명->50여명->100여명-> 오늘 220여명으로 거의 정확히 2배씩 신규환자가 늘고 있으니 내일은 400명, 월요일 800, 그리고 1600, 3200, 6400.... 해서 담주 중반 만 명 돌파가 산술적으로 계산된다. 1인당 2.2명인가 전염시키는 것 같다는 전염계수와도 얼쑤맞는다.


사실 난 초기부터 우리나라의 방역노력이 좀 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 덜해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봐서가 아니라 반대다. 어차피 완벽히 막기는 어려운데 완벽히 막겠다고 너무 자원을 낭비하고 경제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봐서였다. 그보다는 어느 정도 지역감염이 발생할 걸 감내하고 음압병상 외 전담병상도 확보하면서 국민들에게 이 병이 너무 무서운 병이 아닌걸 알리는 캠페인에 주력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처음부터 무서운 병을 완벽히 막을 수 있는 정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웠는데 그것까진 좋은데 그러다보니 이병은 그 격퇴의 내러티브 아래선 조금이라도 뚫려선 안되는 엄청난 무서운 병으로 포지셔닝된 것이다. 


22일 주말오후의 이태원 모습이다. 이대로 한달만 더 가면 자영업자들의 폐업대란이 정말 현실화될 지 모르겠다.


역시 내러티브면에서 보면 영웅(정부)가 조력자들(의료진과 방역에 협조하고 일상생활을 희생하는 일반국민들)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악(무시무시한 코로나19)과 그 악의 조력자들(중국인 입국자, 해외여행객)을 완벽히 무찌르는 영웅설화가 자리했던 것이다. 31번째 환자가 나오기 전까지. 그때까지 정부의 대처와 발표상황, 메이저언론들의 보도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런 신화의 구성요소들이 적확하게 구성된다. 모든 환자들의 동선상황을 공개하고 공개된 영업장마다 전부 며칠씩 폐쇄하고(사실 메르스때도 영업장 폐쇄는 거의 하지 않았다. 보건학적으로도 바이러스가 무기체 표면에서 며칠 생존한다해도 그건 단지 생존일뿐 전염력은 없다고 보니 장소폐쇄는 사실 과한 조치들이다), 심지어 환자가 걸어간 길까지 방호복입은 인력들이 소독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완벽한 영웅의 승리, 즉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이야기구조로 가선 안됐던 것이다. 이보다는 B급 영화나 작가주의 영화에서 나오는 중간중간 사건의 연속에 이어 극적결말보다는 열린 결말로 가는 과정이 중시되고 결말은 담담한 작은 이야기구조로 갔어야했다. 즉 악당이 그렇게 센 놈이 아니니 그 놈을 파괴하는 결말로 모든 자원을 투입해 전력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 같이 놀아볼만한 그러나 질은 나쁜 사람과의 공존이야기로 낮춰갔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메르스사태에서 보듯 온갖 방역노력에도 불구하고 약한 고리들이 있다. 언제든 크고 작은 병원에 자주 갈 수 있는 편리한 의료시스템은 달리보면 병원에 과도한 환자밀집과 같은 말이고 그래서 병원감염에 우리나라는 아주 취약하다. 그리고 세계최고의 도시화는 온갖 대중교통, 밀폐공간의 밀집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대규모 교회들의 밀집예배 등 도처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감염의 약점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목표는 완벽한 방역차단보다는 중국에서 치사율 2%, 우리나라에선 0. 몇퍼센트대일 병의 원활한 치료에 뒀어야했던 것 같다. 물론 완벽차단으로 세계적 모범을 보인다는 ‘승리’는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엄청나고 그걸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4분의 1이 중국과의 교역으로 얻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문을 닫을 수 없는 상황에서 완벽한 방역은 처음부터 어려웠고, 더구나 우리 내부적으로 우리만의 특이하고 바꾸기도 어려운 약점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이렇게 완벽한 승리의 이야기를 목표로 했어야 했나하는 아쉬움은 크다. 


결국 영웅설화는 승리란 결말을 맺지못하게 됐고 이젠 이야기는 주제전환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거의 따놓은 승리(방역차단으로 코로나종식)를 앞둔 상황에서 진짜 악당(신천지)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사실 원형이 있고 역시 영웅설화의 하나의 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까 헐리웃 블록버스터식이 좀 짧은 영웅설화라면 이건 좀더 긴 버전이다. 민담부터 현대영화의 모든 스토리의 공통된 구조를 추출해낸 프로프의 민담형태론은 영웅이 과제를 해결하고 적을 물리쳐 사회에 평화를 가져오는 이야기형태를 분석한 것으로 나도 이 민담형태론에 입각해 아까 정부가 추구한 방역승리 신화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민담형태론은 31개 구조로 상당히 긴데 보통 이 틀을 가져와 설명할 때 사람들은 이 중 대표적 요소들 즉 영웅-과제-조력자-적-문제해결- 귀환 등의 중심구조만 좀 가져와 설명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구조는 다채롭고 그 생략된 구조 몇 개를 가져오면 더 복잡한 이야기들도 설명이 된다. 


이렇게 보면 새로 등장한 신천지는 일종의 ‘가짜주인공’으로 볼 수 있다. 영웅이 집을 떠나 1차과제를 부여받고 해결해 집에 돌아오지만 가짜주인공이 등장해 거짓주장을 하고 주인공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이를 해결해야하는 2차 과제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짜주인공은 정체가 드러나 적이 되고 결국 주인공은 더 큰 승리를 거두며 주인공의 지위가 올라가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는 초기방역 성공을 거뒀던 정부가 신천지란 가짜주인공을 만나 그 정체를 밝혀내고 다시 큰 대가를 치르지만 결국 환자들을 치료하고 병의 확대를 막는 진짜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로의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초기 방역의 승리로 끝나는 깔끔하고 단순한 이야기구조보다는 복잡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피해도 크긴 하겠지만 말이다. 이 고단하고 기나긴 덜 극적이나 보다 현실적인 ‘승리의 드라마’를 위한 사건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그 이야기를 언론이 어떻게 풀어가는지의 잣대로 앞으로 정부와 발표와 언론의 기사를 들여다보는 것도 유효할 것이다.   


  아무튼 감염병에 취약한 한국사회의 구조를 감안하지 않은 완벽한 방역성공이란 목표와 그것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의 메시지들 아래 있는 이야기구조를 제가 주관성 강한 관념적 문화주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 들여다봤습니다. 이견도 많겠지만 이런 민담형태론의 시각으로 사회담론을 보는 건 앞으로의 사건이나 보도전개에 대한 예측성을 더 높여줄 수도 있다고 저는 작게나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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