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월급이 깎여도 미운 놈들 혼내주고 싶은 쾌감이 큰 이유
후배의 페북글에 이런 댓글을 남겼는데...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 최저임금을 깍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 월급이 깎이더라도 오만하고 그래서 미운 당의 후보를 응징하는 쾌감이 월급 깎이는 ‘작은’ 피해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란 미국 정치를 다룬 책에서도 이런 대목이 등장하는데 캔자스의 가난한 농부들은 자기들 보조금이나 의료지원 줄이고 부자들 세금 줄여주겠다는 당에 기꺼이 표를 던지면서 대신 “잘난체하는 민주당 넘들 혼내주고 ‘미국다움’을 지키겠다”는 쾌감에 충만 한다. 물론 이렇게 되는 데는 미국 민주당이 도시의 잘난 중산층에 밀착되고 ‘목소리 큰’ 여성들, 그리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에게 혜택주는 데 대한 ‘백인’ 저학력층의 반감과 박탈감이 작용한다. 여기에다 기독교 보수주의, 그리고 간섭과 보호는 약한 넘들에게나 주라는 미국 특유의 개척주의가 결합해 단단한 이데올로기 효과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경제적 조건이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정통적 맑스주의는 또 이렇게 수정이 필요해지는 것인데, 사실 이미 그 유명한 알튀세르 같은 이들이 오래전에 이데올로기의 효과를 설명하며 충분히 수정하긴 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알튀세르는 현대인들은 이데올로기에 기꺼이 자신의 주체를 맡겨야 그래야 이데올로기란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게되고 안정을 찾게 된다는 얘기를 어렵게 주체의 호명 같은 얘기로 설명해주긴 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얘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의 20대들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내로남불하고 페미들 돕는 민주당’ 까는 글을 읽어야 세상도 알고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그래야 술자리에서 한마디 거들 화제를 얻기에 그런 것 아니겠나..
결국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다 그런 이기주의에 맞는 시야 좁은 안경 같은 이데올로기를 주는 세력이 승리한다는 ‘이기적 이데올로기’의 승리론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런 이기적 이데올로기 전쟁의 결과가 좀 있을 대선의 결과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