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예술의 최고 거장의 첫 개인전을 보고
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야말로 인파가 넘쳤다. 이건희 컬렉션앞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아마도 1시간 정도는 대기를 하며 이어졌는데...
그런데 의외로 젊은 관객들이 넘쳤던 또다른 전시는 '히토 슈타이얼 개인전'이었다. 어제 포스트대로 나는 다른 전시를 보러갔다가 인파를 보고 여기도 가게 됐는데, 솔직히 말해 전시를 보기전까진 이 사람의 이름을 첨 들어봤다. 그런데 알고보니 미디어예술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고 한다. 독일 태생이고 빔 벤더스의 조감독부터 시작했다 하는데 영화와 다큐, 뉴미디어, 예술철학을 넘나드는 그야말로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한다. 포스트재현, 포스트진실 같은 인터넷 시대를 조망하는 개념들도 창시했다하는데, 5개 주제로 이뤄진 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은 이런 철학적 개념과 NFT, 메타버스 등 현재 유행하는 정보사회 현상이 어우러져서 '복잡했다'.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특히 눈엔 꽤 신선함을 던졌다.
사실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영상물은 '야성적 충동'뿐이었지만 오랜만에 시각적으로 배움을 얻는 경험은 됐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스페인 산골마을에 도시에서 전문적으로 살던 이가 양치기로 정착해 산다. 그는 늑대에 맞서 양을 지키는 자신의 생활을 유튜브에 올리다가 이내 그를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쇼의 주역이 된다. 그런데 팬데믹 여파로 그 리얼리티쇼는 중단되고 대신 '크립토 콜로세움'이란 동물 격투기 메타버스로 되고 거기서 격투기 게임이 진행되면서 동물이 죽을때마타 대체불가토큰 NFT가 발행된다. 이런 얘기만 들어도 복잡짬뽕스런 상황을 끌고 가는 화자가 또 따로 있으니 경제학자 존 케인스. 그는 인간의 탐욕으로 통제가 어려워진 자본주의를 '야성적 충동'이 끌고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메타버스와 NFT, 게임 영상으로 덮어진 이미지들에 '자본주의의 모순'이란 서사를 입힌다.
그런데 사실 탐욕스런 자본주의란 케인스의 이야기는 양치기의 작은 서사와 대칭되며 연결된다. 탐욕가득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지만 가장 최신 자본주의 적인 리얼리티쇼와 메타버스에 출연하며 그 일선에 나온 양치기, 하지만 그는 양치기 특유의 비자본적 삶을 오히려 무기삼아 자본주의 기술쇼에 나온다. 그런 그의 삶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늑대'인데 여기서 늑대는 야성적 욕망의 상징이 되며 '케인즈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이야기'와 '양치기의 반자본주의적 삶' 이야기를 잇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렇게만 들어도 도통 이해가 될듯 말듯 할 것이다. 사실 나부터가 영상을 다 보고도 이해가 될듯말듯했으니...아무튼 게임영상이나 메타버스의 형식을 그대로 따와서 다큐로 옮긴 영상기법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영상물은 시청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외에도 코로나시대를 은유해 시위진압경찰들이 춤추는 바이러스에 걸려 죽도록 춤추는 '소셜심'이나 현실의 육체노동이 데이터로 바뀌는 상황을 보여주는 '태양의 공장' 등도 작가의 미디어철학을 담고 있고 최신 이미지언어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나너의기억' 기획전까지 보고 난 다음이라 피곤해서 제대로 보진 못했다.
이건희컬렉션이나 기획전 '나너의기억'을 보러 온 듯한 젊은 관객들이 "이게 더 재밌잖아"를 연발하는 건 옆에서 들으니 확실히 영상과 NFT 등에 익숙한 젊은 관객 취향 전시였던 것 같다. 하마못해 마치 이태원 댄스클럽 입구에 온 듯한 정도의 현란함은 느낄 수 있었으니.
다음에 다시 가서 제대로 다시 보고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느껴볼까도 싶지만 아마 다시 제대로 봐도 이해도는 높을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