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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May 18. 2020

가짜뉴스와 선후관계 그리고 발포이전 '곤봉'


벌써 40년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도 옛날 20년전 일이라 생각했던 5.18인데 거기에 20이 더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내개인의 일들이 더해지면서 5.18 같은 일은 나 개인의 일과는 관계없는 ‘역사속 사건’이 되긴 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20년전 혹은 30년 전 만해도 약간의 간접적 기억들은 있었다. 친가, 외가 친척들이 다 광주나 그 외곽에 많이 계시다보니 가끔 결혼식 등에 모이시면 잠깐 그 ‘5월일’을 누가 말하면 바로 화제를 딴데로 돌리시곤들 했다. 물론 가끔 그때 죽은 친구얘기를 하는 아저씨나 그때 “화순탄광 다이나마이트들 터질까봐‘ 가슴졸였다는 화순의 할머님 정도나 말을 길게 하시곤 했다.




그런데 특히나 그때 친척들이 ‘아이고미’하시며 말을 끊던 사례는 바로 ‘곤봉’얘기였다. 공수부대원들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깨져나간 사람들 얘기를 하시며 진저리를 치셨는데...돌이켜보면 여기에 한가지 주목하고 싶고 요새의 가짜뉴스에 대해 얘기할 대목이 있는 것 같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5.18 바로 그날에 발포가 있었던 건 아니다. 공수부대의 발포는 21일에 있었다.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서기 시작한 건 21일 발포이후(20일 자정에도 발포가 있기도 했지만) 그날 오후부터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은 21일이 아니고 18일이다. 5.17 계엄확대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지자 18일 7공수여단이 시위자는 물론 일반 행인에까지 곤봉과 심지어 대검을 휘둘렀고 18일에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그 착검진압은 당시 5공 정부의 공식문서에 남아있다. 




결국 그날이후도 시민들로서 저항할 권리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가령 18일 혹은 19일부터 무기를 들었어도 시민들에겐 정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러지 않았고 다시 한번 인내하고 그러나 참지 않고 19일에 더많은 시민들이 항의하러 거리로 쏟아져 나와 수십만 명이 됐다. 17일 이후 시위를 하지 못했던 다른 지역과는 이미 발포사건전부터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21일에 도청앞에서 발포가 시작된 것이고...




시민들이 먼저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해서 공수부대가 발포한 것이라는 가짜뉴스는 선후관계가 완전히 틀린 것이지만 더 나쁜 건 그래서 마치 그전에 있었던 공수부대의 (곤봉과 대검)살상행위는 없었던 것인양 가리는 것이다. 막말로 칼과 창 같은 냉병기로 머리를 깨고 팔을 자르는게 더 끔찍하면 끔찍하지 총쏘는 것만 폭력이겠나? 




발포가 먼저고 시민들의 무장은 그 뒤지만 이미 그전에도 불법군대의 시민살상이란 ‘인도에 반한 죄’는 시작됐던 것이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그건 강조하고 넘어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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