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잉글리쉬 티처

by 김봉

"Hello? who's calling please?"

(여보세요? 누구세요?)

"Sunshine. Hi, it's Roy."

(썬샤인 나 로이야)


돌이켜보면 무척 반갑고 놀라웠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걸 표현할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로이가 수현을 끌어안으면서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현은 "나도" 라고 말해야 했으나

"숙소는 예약했어?" 라고 물었다.


"정말 일을 그만두고 온 건 아니지?"

수현은 로이가 메고 있는 배낭을 흘긋거리며 말했다.

"그만뒀어. 나 한국에서 살 거야'


로이는 수현을 안았던 팔을 풀고 수현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는 13시간 비행을 한 사람답지 않게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일년전 비자가 만료되어 캐나다로 돌아가야 한다는 로이가 불쑥 한국으로 돌아와 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로이는 EPIK 이라는 중학교에서 방과후 영어 강사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의 비자를 가지고 입국했다. 1년짜리였다. 한국인 영어강사보다 훨씬 많은 급여에 월세와 퇴직금까지 명시되어 있어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로이는 일시적인 일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로이는 방과 후 영어 강사일에 불만이 많았지만 수현을 넘치게 사랑했다.

로이는 무슨 날이 아닌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Morning present' 라며 장미 한 송이를 선물했고,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줬다. 수현은 그가 부모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느끼기도 했다.

누가 그녀를 햇살이라고 부를까.

누가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출까.

누가 그녀의 눈을 만지며 그것이 한글의 모음을 닮았다고 할까.


수현과 로이는 서로 대화하다가도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 보았다.

크고 깊은 로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신비감에 빠져들곤 했다.

그의 눈에는 지방대라는 차별도,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편견도 가난도 들어 있지 않았다.

로이는 그런 수현을 말 없이 바라보다 눈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주말에 이불을 빨래해서 널어놓고 로이가 기타를 치는 동안 소파 한켠에서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를 읽으며 햇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구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로이가 저스틴 비버 노래 가사를 흥얼 거리며

"Cause I am off my face, in love with you" 라고 말하며

유치하다며 서로 얼굴을 보며 웃기도 했다.


수현은 문득 그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결혼과는 상관없이 로이는 수현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아기를 가지는 것도 모두 그의 바람이었다. 로이가 자신의 부모도 결혼하지 않고 40년을 살았노라고 했을 때는 수현은 수긍했다. 어차피 결혼에 대한 환상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아기는 가지고 싶다는 로이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수현은 어렵게 찾은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고, 그러려면 자리를 비우지 않고 계속 일해야 했다.

로이가 수현의 눈을 닮은 아이가 궁금하지 않냐며, 그런 햇살같은 아기를 가지고 싶다고 할 때에도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죽자사자 일했지만 늘 그자리였다. 로이가 중학교 방과후 강사 말고 학위를 더 따서 국립대 대학교수 자리가 되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어쩌면, 어쩌면 가족을 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다음달 생계가 막막해 질 수 있다는 공포 없이, 불안없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수현의 이런 생각과는 상관없이 수현의 배는 점점 불러왔다.



#서수진, [코리안 티처] 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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