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몇 년 전에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수술 후 6개월 정도는 꾸준히 약 처방을 받아야 했다. 기존에 받은 약을 거의 다 먹은 한 달쯤 지나, 병원 예약일에 맞춰 내방했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 후 접수처에서 받은 약 처방전을 들고 병원 근처에 위치한 약국으로 힘겹게 걸어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걷는 게 힘들어서 한걸음 한걸음 겨우 발을 내디딜 때였다. 대형 약국인 데다 대학병원 앞 상권 좋은 요지에 자리 잡은 약국이라서 벌써부터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으려는 사람들이 내 앞에 이삼십 명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픈 환자라면 그런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몸도 회복이 더딘 데다 설상가상으로 며칠사이 오른쪽 눈이 충혈되고 가려워 손으로 비비길 반복했다. 더 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약국에 들어서자마자 약사에게 처방전을 주고 나서, 눈 증상을 말하고 눈병에 맞는 안약을 하나 달라고 했다. 하얀 가운을 걸친 약사는 젊은 남자였다. 약사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는 뒤쪽에 위치한 벽면 약 진열대로 가서 안약을 두 개 꺼내 들고 왔다. 양손에 하나씩 들더니 두 손을 내 눈높이만큼 들어 올려 나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시원한 박하향이 나는 안약을 드릴까요? 아니면 향이 없는 안약을 드릴까요?”
약사의 두 손에 든 안약을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어떤 게 박하 향이 나는 안약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잠깐 말을 잊은 채 하얀 가운을 입은 약사를 쳐다보고 있자니 마치 금도끼 은도끼에 등장하는, 하얀 두루마리를 걸친 산신령 같았다. 가난한 나무꾼이 빠뜨린 도끼를 들고 나타난 산신령 말이다.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
"이 은도끼가 네 도끼냐?"
어린 시절 밤에 변소 갈 때 공포에 떨었던 귀신 이야기도 떠올랐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나는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말 잘 듣는 걸로 주이소!”
내 입장에서는 약이 눈에 잘 들으면 되지 향으로 선택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사 입장에서는 아마도 똑같은 성능의 안약에 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종류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 순간에 처방 약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며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던 손님과 서서 기다리던 지친 손님들 이삼십 명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약을 받아서 힘겹게 절뚝거리며 나오면서 의도치 않게 잠시나마 모두를 웃게 만들었던 상황을 생각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웃을 수도 있고, 남을 웃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살면서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