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포착 1>
어느 날 좁은 골목길을 운전하고 있었다. 혹시 사람이나 차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저속으로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운전 중 몇십 미터 앞쪽에서 젊은 엄마와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둘은 내 차를 피해 오른쪽으로 비켜 걷고 있었는데 여자아이는 내가 발견하기 이전부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다. 모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우연히 쳐다보다가 인상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느린 자동차 속도를 더 늦춰서 따라가며 지켜봤다.
여자 아이는 행복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마치 어린 사슴이 풀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것처럼 왼발과 오른발을 뗄 때마다 무릎이 자기 허리보다도 더 높게 올라가면서 연신 폴짝폴짝 뛰었다. 걷는다고 하기보다는 몸이 스카이콩콩이나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행복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 행복은 여자아이의 발끝에서 펌핑되어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엄마의 얼굴로 번지고 있었다.
<순간포착 2>
퇴근하고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내가 삶은 밤을 까먹거나 사과 조각을 한 손에 집어 든 채 드라마에 푹 빠져서 마치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집중하고 있다가 밝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 순간이 행복이다. 어떤 날에는 아내가 거실에 앉아서 캘리그래피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걸 보면 그게 행복이면서도 슬픔이다. 부족한 나를 만나 잘 살고 있는 게 감사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모든 게 영원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슬픔이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공간에서 소소하게 돌아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본다는 게 행복이다.
인연
네가 세상 어디에 있든지
네가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내 눈에서 멀어져 다시 만나기 어렵든지
아니
정말 슬픈 상상이지만
네가 다시 볼 수 없는 천국으로 먼저 가든지
우리가 이별한다면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눈물로
이따금 쓰라림으로 범벅이 되어
물 없이 삼킨, 삶은 고구마 같은 그리움이 될 거 같아
그런데 참 신기하지?
세계 인구는 팔십이억 명이 넘었고
인류가 생긴 이후로 셀 수 없을 만큼의 사람이 살다 갔는데
내 마음으로 너를 불러들일 때면
어김없이 단 한 사람, 너만 찾아온다는 사실이
<순간포착 3>
아내가 승진에서 미끄러졌다. 마음이 많이 힘든가 보다. 승진하면 새 차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아내가 전화와 서는 “여보! 돈 절약했네?”하며 울먹이길래, “괜찮아! 까짓, 떨어졌지만 기념으로 사줄게!”라고 했다. 퇴근 후 집에 왔더니 아들이 아내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You raise me up’이 아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와 집안 가득 스며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음악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었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내가 시험 못 쳤다고 실망하더나? 다음에 승진하면 되지”라고 하며 아내를 피아노 의자 옆에 앉혀놓고 연주를 해주고 있었다. “음악이라는 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민준이는 큰 기쁨과 위로를 모두 주었구나” 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 옆에는 예진이도 아내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내는 행복과 실망, 즐거움과 슬픔 등 온갖 감정이 버무려진 채 울고 있었다. 아마 행복이 펑펑 눈물 나게 몰려들었을 거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가족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선물
삶이 꿈을 닮았습니다
사는 일이 마음 같지 않습니다
살다 보니 갑작스레 닥치는 꿈같은 일에
몸을 가눌 수 없습니다
꿈이 삶을 닮았습니다
내 맘대로 꿈꿔지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악몽에는 온몸이 가위눌려
꼼짝달싹 할 수 없습니다
삶도 꿈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이 둘은 살아 있을 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네요
오늘을 살고 있고 꿈꿀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하며 살아요
그게 선물 값하는 삶이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