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순간포착
한가위를 일주일 남겨둔 가을밤, 요 며칠 만에 깜깜하던 하늘에 초승달 무드등이 켜지더니 매일마다 풍선에 바람 불어넣듯 둥근달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연극무대의 가려진 커튼이 조금씩 열리는 것처럼 밤하늘의 달은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고 있고, 많은 연인들은 암흑커튼이 다시 쳐지는 날까지 지루하지 않을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밤하늘에 새겨놓을 것이다. 운동 후 달구경을 하며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타지에 살고 있는 딸이 가족 단체톡에 사진을 잔뜩 올렸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같이 서울로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경회루 사진,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했던 그림, 한강 공원에서 찍은 서울 야경, 흐르는 개울물에 발들만 보이는 사진......
특히, 흐르는 개울물에 흐릿하게 찍힌 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청계천이 아닌가 싶었다. 개울물에 앙증맞게 담그고 있는 발을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얼굴도 없이 발목까지만 보이는 발이지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찌릿하게 사랑스럽다. 아마 그게 손이었어도 마찬가지일 거고 신체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더라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상대가 신었던 양말을 봐도 그 사람이 되어 내 앞에서 걸어 다니며, 두고 간 셔츠만 봐도 그 셔츠는 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서 있게 된다.
나는 바로 댓글을 달았다. "어떤 발이 우리 딸의 발인지 딱 보니 바로 알겠네!" 딸이 바로 의구심 있는 반응을 보이며 슬쩍 나에게 떠봤다. "왼쪽?" 자기 발과 비슷하게 보이는 한 친구의 발이 자기 발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닌데.... 오른쪽인데!"라고 했더니, 딸이 "진짜 맞췄네!" 하며 놀라워했다. 나는 이어서 댓글을 달았다.
"아빠가 너 아기 때부터 여태까지 발톱을 깎고 있는데 그걸 모를까?"라고 답했다. 딸은 "너무 슬프다."라고 하며 울컥한 거 같았다. 딸이 너무 슬프다고 느끼는 그 감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안다.
예전에 군부대를 찾아가는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림막 뒤에서 손을 보고 아들을 맞히는 코너가 있었다. 어머니가 당신의 아들 손을 알아보고 잡으며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에 아들이 느꼈을 감정도 이와 비슷했을 거 같다. 딸은 20대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딸이 집에 한 번씩 오면 나는 거실 바닥 소파에 기대어 앉는다. 그러고는 내 발 위에 딸의 두 발을 올려서 발톱을 깎아주고 발마사지를 해준다. 딸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폭풍 수다를 쏟아내곤 한다. 이것은 딸이 아기 때부터 하고 있는 나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한가위가 일주일 남았다. 면 소재지 지방에 살고 있다 보니 자녀들은 대도시로 떠난다. 명절은 그리움이자 기다림이요, 행복이자 쓸쓸함이다. 기다림과 만남 그리고 이별이라는 3단계 과정이 글의 서론, 본론, 결론처럼 정해져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과정들은 각 단락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청계천 흐르는 물에 담갔던 딸의 두 발을 초승달에 행복으로 담아놓았다. 며칠 후 둥근달이 만들어지면 자녀들과 지루하지 않을 우리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 안에 깊이 새겨 넣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