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 대한 다짐

행복 순간포착

by 봉림숲

만남



사슴벌레와 만남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 사슴벌레를 잡았다. 키우겠다고 집으로 가져와서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사슴벌레 만났어!”

아들은 사슴벌레를 잡은 게 아니라 사슴벌레를 만나 우리 가족으로 맞이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저녁에 아내와 나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들에게 더 좋은 곳에 살게 해 주자고 설득하여 아파트 뒤 숲에 놓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애기똥풀과 만남


딸이 초등학생일 때 애기똥풀을 키우겠다고 졸라서 들판에 나가 애기똥풀을 캐어 와서 베란다 화분에 옮겨 심었다. 딸은 매일 몇 번씩 베란다에 나가서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꽃이 피었는지 확인을 했다. 꽃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애기똥풀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을 기다리던 딸이 기뻐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빠, 애기똥풀에 꽃이 피었어!” 사진을 보니 노란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매일같이 꽃 피기를 기다리더니 드디어 만난 것이다.




만남에 대한 반성


나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며 감탄을 했었다. 어떻게 보면 성가실 수 있는 방문객을 맞이하면서도,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요, 그의 미래와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시선만큼 만남에 대해 멋지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나를 돌아봤을 때 만남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곤충 한 마리를 대할 때도, 들판의 풀 한 포기를 대할 때도 만남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은 더더욱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매일같이 사람, 생명체, 사물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가족이나 직장 또는 친분이 있는 지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만남이라기보다는 그냥 나의 의식과 행위가 미치는, 스쳐 지나가는 객체쯤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카페나 식당에서 주문받는 직원과 마주할 때도, 산책길에 피어있는 들꽃을 바라볼 때도 만남의 시선을 갖는 연습을 해야겠다.




서로 만남


만남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서로'이다. 서로의 만남은 반드시 상대에게 좋든 그렇지 않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와 나의 관계에 희로애락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 간에도 만남이요, 사람 대 사람과도 만남이요, 동물 대 사람과도 만남이요, 세상 모든 건 서로 만남으로 시작하여 역사가 된다. 중세시대 제국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을 때 아즈텍 제국과 앙카 제국이 스페인의 정복자인 코르테스와 피사로를 만나 노예로 전락하게 된 만남은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공포와 절망의 만남이었다. 열 두 해를 혈류증으로 고생하다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 치유를 받았던 성경의 한 여인과 예수의 첫 만남은 그 여인에게는 평생에 있어 가장 기쁜 순간이었을 것이다. 연인으로 만나 결혼했다가 헤어진 많은 부부의 만남은 후회와 아픔으로 남기도 한다. 이렇듯 만남이라는 것은 정말 실로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의 미래와 인생이 나에게 오기도 하지만 나의 미래와 인생 또한 그에게로 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왕 좋은 만남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고 희로애락 중에서 희와 락이 더 작동할 수 있도록 나의 만남을 소중히 지켜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 구경하며 걷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