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행복 순간포착

by 봉림숲

쌀쌀한 오후에 소나기 만났던 날


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월이 40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하면서도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는 작은 일로 생각하며 넘길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살아가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 인생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던 사소한 듯 보이나 중요한 이야기를 지금 하려고 한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서고 있었고 그날은 오후부터 꽤 많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야외 운동을 좋아하던 시절이라 늘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다녔는데 그날 혼자였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난 시간도 한참 지났던 거 같고 혼자 귀가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정이 있었을 거다.


어쨌든, 쌀쌀한 날씨에 소나기까지 맞으니 내 몸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30분쯤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아직 읍내도 벗어나지 못한 시간에 온몸은 물론이거니와 가방까지 다 젖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몸은 추위에 사시나무 떨 듯했다. 도로를 끼고 있는 어느 집 대문 아래로 뛰어 들어가서 잠시나마 비를 피했다. 2층 양옥집인 그 집 대문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철문이 달려있었고 상부는 콘크리트 지붕으로 되어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소나기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나는 오그라든 몸을 대문 구석진 곳, 비를 피할 수 있는 귀퉁이에 기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철문이 ‘끼~익’ 소리 내며 열리면서 아줌마 한 분이 나왔다. 그분은 나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 젖은 옷 대신 집에 있는 옷을 걸치게 했고 욕실로 안내해서 씻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 씻고 나서는 따뜻한 안방에 이불을 폈다. 나는 발을 뻗고 앉아서 따뜻한 이불속으로 두 다리를 밀어 넣었다. 추위에 떨던 몸은 이내 녹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의도치 않은 배려의 수혜자로 낯선 집에 앉아 있으니 어색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시골집인 우리 집에 비해 호화로운 실내와 욕실까지 갖춰진 집을 앉은 채 둘러보고 있으니 마치 순간이동하여 신분 상승을 한 느낌이었다.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있다가 비가 그치면 가라고 하며 안방을 내주고 나가신 걸 보면 어색하게 앉아 있는 어린아이에 대한 배려도 깊었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앉아 몸을 녹이다가 비가 그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계약자 만나던 날


몇 년 전 겨울이었다. 건물에 세입자가 나가게 되었고 새로운 분이 계약을 원해서 약속을 잡게 되었다. 약속한 날 따뜻한 카페 창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 했다. 서로의 조건에 대해 말하였고 최종 결정은 며칠 후 하기로 했다. 이전에 너무 싸게 임대를 내줘서 대폭 올려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분은 이전의 금액 정도에서 임대를 얻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계약을 하게 되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말썽이 없는 세입자를 들이는 게 중요하다. 집에 돌아와서 받은 휴대폰 번호를 주소록에 등록을 한 후, 친구추가 업데이트된 카톡 메인화면에서 그분의 카톡 사진들을 넘겨봤다. 몇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하는 생각이 들면서 누구인지 알아봤다.


어린 날 쌀쌀한 오후에 소나기 만났던 날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35년이나 흘렀다. 따뜻하게 안방으로 맞아들이던 그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건물에 입주하고 싶어 하는 분은 그분의 가족이었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부분 그분의 조건대로 임대계약을 했다. 무척 성실하고 친절해서 그 브런치 카페는 점점 입소문을 타게 되어 한 번씩 커피 마시러 갈 때마다 손님들이 가득 차 있어서 감사하고 흐뭇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터졌지만 그 카페는 힘든 겨울을 잘 이겨냈고 지금은 단골고객이 더 늘어난 걸로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임대 갱신 일자가 다가왔다. 그분은 갱신을 원한다고 문자가 왔다. 나는 답글을 남겼다.

‘코로나 영향도 받았을 걸로 생각되어 지금 임대료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괜찮겠어요?’


이 이야기 주제는 쓸까 말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우리는 살아가며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쓰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건, 이 이야기가 알려져 혹시 그분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분은 알지 못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업보 또는 인과응보


업보 또는 인과응보라는 말은 불교와 힌두교에서 나왔다고 한다. 워낙 대중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심오한 두 낱말은 일상어가 된 지 오래되어 사소한 사건이나 실수를 대할 때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두 단어를 굳이 해석하자면, 선악의 행동이 미래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등 뿌린 대로 거둔다는 내용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나의 이야기를 굳이 종교적 관점으로 심오하게 해석하면서까지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그러나 매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 사건들이 구체화된 표상일 수 있고, 오늘의 나는 훗날 어느 날에 다시 소환될 것이다. 40년 전의 사건이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나의 이야기는 사소한 듯 보이지만, 많은 종교에서 얘기하는 삶의 본질을 깨닫는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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