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에서의 하루

행복 순간포착

by 봉림숲


언덕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내 주말농장은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농장에 가는 날이면 일을 하기보다는 농막 데크 위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낮잠 자기 또는 동네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그러다 보면 금세 해는 져서 얼른 정리하고 귀가할 시간이 되곤 한다. 덕분에 농장과 정원은 풀밭으로 변하기 일쑤지만!


부대끼며 살아가는 주변에서 늘 보게 되는 수많은 자동차나 다양한 사람들은 특별히 흥미롭거나 관심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나와 그들의 영역이 중첩이 되면서 나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성가신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과는 좀 동떨어진 위치에 있는 농장에서 방해받지 않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나 신작로를 걷는 사람들, 논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은 모두 가치가 있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관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절하게 베풀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철저하게 배타적인 상황에서 의미 없는 관용의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사를 가고 없지만, 농장 아래에는 유별난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동네에서 본인에게 조금만 거슬리는 작업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집 앞에 큰 트럭이 지나가면 집이 망가진다고 온갖 잡동사니로 길을 막거나 몸소 뛰쳐나와 도로 한복판에서 두 팔을 활짝 펴고 '나를 밟고 가시라!' 용맹스러운 노병의 여전사가 되기도 했다. 그 집 주변으로는 온갖 나무를 심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하기만 했다.


노인의 집 마당 중 반은 대나무밭이었다. 처음에는 대나무 높이도 높지 않았고 많지도 않았으나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숲을 이루었다. 노인은 낮에는 사람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 저녁 무렵이면 새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매일마다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서는 대나무숲을 두들기면서 고함을 쳤다.

"워~워~! 워~워~!"


수백 마리의 참새 무리는 내리치는 장대소리와 노인 고함소리에 놀라서 허공을 한번 순회하고는 다시 대나무숲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면 또다시 노인은 어두워질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아마도 참새들은 보금자리에 들기 전 꼭 해야 할 취침의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노인은 최고 수준의 참새 타운을 직접 만들어 놓고서는 입주자를 거부하고 있는 셈이었다.


참새 쫓기 한 시간쯤 지나면 그 노인은 팔에 힘이 빠져서 대나무를 내리치는 소리도 약해지고,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이 쉰 소리가 들렸다. 우렁찼던 외침은 상처 난 짐승이 내는 신음과 유사한 소리로 변해버렸다. 참새와 그 노인의 전쟁은 누가 이겨서 끝났던 게 아니고 시간이 끝을 맺게 해 줬다. 밖의 어둠보다 더 깊을 대나무숲의 어둠에서 참새들은 잠이 들어 조용해졌을 테고, 그 노인은 돈키호테 같이 승전을 만끽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을 테다. 몰이해가 가득했던 사람의 대낮은 관용을 품은 늦저녁 어둠이 보듬어 치료해 주었다.


그 노인의 대나무숲을 보면서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이 힘든 까닭은 이유 없이 찾아온 어떤 불행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대부분은 스스로 심어놓은 일들이 원인이 되어 힘들어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대나무숲은 원래 있었는가? 아니면 내가 만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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