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순간포착
우리 교회에는 일반사람들에 비해 지능이 조금 낮은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말은 어눌하게 하시지만 누구를 보든 항상 밝은 얼굴로 말을 건넨다.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분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가까이 보이는 사람마다 거리낌 없이 밝은 얼굴로 다가가서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 질문이 대게는 하찮은 것들이거나, 대답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므로 귀찮아서 피하는 듯 보였다.
나도 어눌한 말투로 어린아이처럼 쏟아내는 그분의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경험이 있다. 솔직히 그 이후로는 일일이 대답하기가 귀찮기도 해서 내 주위에 보이게 되면 인사만 하고 얼른 피하기도 했다. 얼굴에는 가식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은 질문과 대답에도 자기 수준의 지적 기준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게 되고 그 기준에 미달된다고 판단하게 되면 편견의 울타리를 쳐서 막아버린다.
어느 일요일 예배당 입구에서 우연히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 그분이 계셨다. 그분은 나를 쳐다보자마자 얼굴을 내 가까이 들이밀고는 뜬금없이 용서를 구했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보다시피 이렇게 어리숙해서 남에게 피해를 줘요. 죄송합니다.”
연신 부정확한 발음으로 사과를 했다. 순간 양심의 회초리가 가식덩어리 내 심장을 번개같이 내리쳤다. 벌거벗겨진 나는 부끄러움에 화끈거리며 한참을 그분 앞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참 후에 그분을 쳐다보며 진솔하게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누가 부족해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나는 그분에게 진심으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대형 화마가 덮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때 혼자 사시던 그분의 집도 모두 전소가 되어버렸다. 임시 컨테이너에 기거하며 지내면서도 불평하나 없으시다. 지난 일요일에도 아무 일 없는 듯 밝은 모습으로 교회에 와서 환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성경에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라고 한다. 누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까운 자인가? 누가 겸손한 자인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을 곰곰이 새겨보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사람을 낫게 여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남을 낫게 여기라'라고 한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에 커트라인을 두지 않는다면 그게 겸손을 실천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