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순간포착
나는 행복과 쾌락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리성이라고 주장했던 에피쿠로스 철학이 지금도 통용된다는 것을 알겠고,
사전적으로 '쾌락은 도파민을 자극하는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이지만 행복은 지속적이고 내면적인 삶의 만족감'이라고 정의해 놓은 이분법적 흑백주장에 대해서도 들은 바 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쾌락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라는 수많은 칼럼, 강의, 설교가 있다는 것도 알겠다.
추상적으로 흐르는 감정의 강물에 감별 바가지로 감정을 퍼담아 낼 때마다 이건 쾌락이고 저건 행복이라고 바로 감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몸도 상하고 정신 건강에도 해롭다고 말하는 쾌락만 따로 퍼담아 하수구에 흘러 보낸 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남을 작정이다.
행복과 쾌락은 애초에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즐거움의 여기 상태(excited state)이지 않을까?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을 선과 악의 잣대로 나눈다면, 먹고 자고 보고 즐기며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율법의 기준으로만 들이대던 바리새인 같은 무미건조한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되고 말 것이다.
아래의 경우에서 어떤 상황이 행복이고 어떤 상황이 쾌락일까?
1. 자동차로 벚꽃길을 지나며 활짝 핀 벚꽃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다면 이는 행복인가? 쾌락인가?
2.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을 나눈다면 그건 행복인가? 쾌락인가?
3. 공원에서 아이의 아장아장 걸음을 즐겁게 보고 지나간다면 그건 행복인가? 쾌락인가?
4. 친한 친구들과 모여 술 한 잔 기울이며 즐거움을 나눈다면 그 술은 행복인가? 쾌락인가?
5. 취미 동호회에서 땀 흘리며 운동할 때의 도파민은 행복인가? 쾌락인가?
6. 음악에 흠뻑 젖어 있는 순간은 행복인가? 쾌락인가?
7. 물질적 풍요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행복인가? 쾌락인가?
8. 지속적인 삶의 만족감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삶인데 과연 행복은 존재할 수 있는가?
잠깐의 운전 시간에 하늘 위에서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벚꽃을 보며 도파민이 솟구치는 감탄을 하게 되는 시각적 즐거움은 피해야 할 감각적 즐거움인가, 아니면 유지해야 할 내면적인 만족감인가?
일시적 쾌락 또는 지속적 행복에 대한 정의는 시간적 개념인데 과연 시간의 장단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면 처음에는 쾌락일 것이며, 어느 시점부터는 행복으로 바뀌는 모순이 발견된다. 마치 죄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선으로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감각적 쾌락 또는 내면적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도 어느 감정선쯤에서 구별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실체가 없는 마음은 감정의 혼합체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여러 감각들이 뒤섞여 있다. 따라서 행복과 쾌락은 마트 진열대 상품들처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애초에 행복과 쾌락을 구별할 때 선악의 이분법을 적용한다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나는 행복과 쾌락을 분별할 능력은 없지만 살아가며 행복이라고 부를 만한 즐거움을 자주 느끼며 살아간다. 그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쾌락의 도파민일 수도 있고 행복의 엔도르핀일 수도 있겠다. 그때의 즐거움은 일시적이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때의 즐거움은 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것들도 아니다.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즐거움은 따뜻한 봄날 보슬비 맞는 화초처럼 자연스레 즐거움이 온몸으로 나른하게 스미는 것들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딸이 나를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한다. 나는 딸의 피아노 연주를 참 좋아한다. 피아노 연주 실력은 중고등 학생일 때 배웠던 딱 그 정도라 어려운 코드에서는 고르지 못 한 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위한 딸의 피아노 소리가 거실에 퍼질 때, 나는 예술의 전당 VIP석에 앉아 가장 뛰어난 공연을 듣는 것만큼 행복에 빠져진다.
아내와 자던 밤에 아내가 코를 많이 곤다. 참다못해 거실 소파로 피신해 누웠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 부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힘들다는 내색 없이 매일 이른 아침에 먼저 출근하는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아내는 회사에서 종일 일하고 저녁에 귀가해서 집안 살림을 한다. 눈 떠 있을 때는 참아내던 고달픈 몸이 잠에 빠져들자 뚫린 코가 대신해서 하소연을 하게 되고, 폐에서 벌린 입으로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것이다. 나를 향한 소리가 좀 요란스럽고 안쓰러우나, 잠을 설치면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눈은 억지로 감고 있지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문 입술이 늘어났다.
아내의 저녁 설거지 소리가 들렸다.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요란하면서도 시원스럽게 거실로 퍼졌다.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방해가 되어 방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다가 생각을 바꿔 잠시 눈을 감고 들어보았다. 계곡 트래킹하면 들을 수 있는 상쾌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소리다. 아내는 가족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난 후 깨끗한 폭포수에 더러워진 그릇을 정성스럽게 씻고 있는 것이다.
행복을 굳이 정의하려고 들지 말자!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즐거움은 나에게로 향한 너의 소리이고 너에게로 향한 나의 시선이다. 나에게로 향한 너의 시선이고 너에게로 향한 나의 소리다. 그게 행복이다.
서로가 교감할 때 오는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혹시나 쾌락이 끼여 있다고 할지라도 너무 따지지는 말자! 왜냐하면 행복은 완벽한 선은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