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순간포착
살과의 전쟁
출근할 때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 “아침밥은 먹었어?”
(아내) “아니, 안 먹고 출근해.”
(나) 걱정이 되어, “챙겨 먹고 출근을 하지!”
(아내) “다이어트 중이야, 살 빼야 해! 그래서 밥은 안 먹고 우유 한 컵 마시고, 바나나 3개 먹었어!”
(나) 허탈한 웃음으로 “그게 무슨 다이어트야? 아침 식사보다 더 양이 많은데?”
(아내) “배가 고파서 안 돼, 먹어야 돼!”
공깃밥 한 그릇 이상의 칼로리를 섭치 해놓고는 굶었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과연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격식
고된 하루가 끝나고 밤이 되어 아내랑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장난을 걸었는데 아내는 뭐가 서운했던지 뾰로통하다.
아내가 돌아누우며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길래,
“생각하는데 굳이 가슴에 손을 올릴 필요가 있나요?”라고 답했더니
어이없이 웃다가 금세 코를 골며 잠들었다.
우선순위
어린 시절 할머니가 자식이 배고파하는 것만큼 가슴 아픈 게 없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에 대한 공감은 부모가 되어서 하게 된다. 아들이나 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며, “아빠! 배고파, 먹을 거 없어?” 하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냉장고를 뒤적거리게 된다. 그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지 다 미루게 되고 애들 먹이는 일이 영순위가 된다. 자식에 대한 이런 마음은 먹고살만하고,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를 살면서도 변함이 없다. 침실에 들며 아내에게 공감을 얻고자 얘기를 꺼냈더니, 아내는 “나는 안 그렇는데?”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잠깐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둘의 인식 차이는 사랑의 깊이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단지 관점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에게 아내는 나보다 더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
포장이사
포장이사를 했다. 오전에는 살던 집에 이삿짐이 내려오는 걸 확인했다. 오후에는 다른 일을 봐야 해서 이삿짐 사장에게 새집에 장롱, 책상, 피아노 등 살림살이가 위치할 자리를 먼저 지정해 주었다. 어느 정도 이삿짐이 사다리차로 올라가는 걸 확인한 후 아내에게 맡겨놓고 자리를 비웠다. 나중에 와서 보니 인부들이 안방에 장롱이 안 들어간다고 한 짝은 따로 떼어서 작은 방에다 던져놓듯 배치해 놓고 가버렸다. 안방은 보폭 하나쯤 되는 비어 있는 공간이 생겼고, 작은 방은 덩치 큰 가구가 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너무 좁아져 있었다. 이사 전문가들이니 주인이 주문한 대로 알아서 해놓았겠거니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여자 혼자라고 대충 해놓고 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자를 꺼내서 안방 장롱 여유 공간을 재어보니 마감재 60센티미터 정도만 잘라내면 분리 설치된 장롱이 안방에 딱 맞게 하나로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며칠 후 제자리에 배치하기로 마음먹고는 아내에게 전화해서 퇴근할 때 농장 창고에 들러서 마감재를 절단할 전기톱(직소)을 챙겨 오라고 했다. 여자들은 공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상세히 설명을 하였고, 인터넷에 똑같은 전기톱 사진까지 캡처해서 문자로 보냈다. 저녁에 아내가 퇴근하며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그녀가 가져온 공구는 전기톱(직소)이 아니라 벌목용 체인톱이었다. 순간 화를 냈다. 아내는 전기톱 맞지 않냐고 반박했다. 나는 '전기톱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도대체 이 연장에 전기코드는 어디 붙어 있냐?'라고 쏘아붙였다. 집안 분위기는 요즈음 영하의 날씨처럼 냉랭하게 되었다. 신축아파트의 번쩍번쩍한 거실 한쪽에 생뚱맞게 체인톱이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여기서 저걸로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상상해 봤지만 내 머리는 그렇게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딸의 경고장
딸이 수학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저녁 7시쯤 집에 도착했다. 수학여행 중에 아내한테 선물할 인형을 샀나 보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줬는데, 아내는 그런 걸 왜 사 왔냐고 잔소리를 했나 보다. 집에 들어와서 보니 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의 등짝에 노란 경고장을 붙여놓았다.
‘경고장 귀하에게 아래의 내용으로 정중히 경고합니다.
내가 생각해서 선물을 사 왔는데 그 성의를 무시하고 날 나무랐다.
2016. 10. 12. 발송인 * * *’
합리적 의심
아내가 복숭아를 사 왔다. 깎아서 달라고 했더니 깎지 않고 껍질째 잘라서 그냥 준다. 나는 과일을 껍질째 먹으면 과일 특유의 향이 느껴지지 않아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는 껍질에 영양이 많다며 복숭아뿐만 아니라 사과도 그대로 잘라서 내민다. 결국에는 티격태격하다가 내가 직접 깎아서 먹거나 아내가 마지못해 깎아 준다. 살아온 날들을 유추해 봤을 때 아내는 나의 건강을 생각한 깊은 배려로 껍질째 주는 거라기보다는 귀찮아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구피(guppy)
단톡방에 교회 권사님이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구피를 준다고 했다. 구피(guppy)가 수족관에서 키우는 관상용 열대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단톡에 질문을 남겼다.
“제가 고스톱 쌍피는 알겠는데요, 도대체 구피가 뭡니까?”
라고 물었으나, 답이 없어서 아내에게 구피가 뭐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우리 집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 그 집에 엄청 많아서 몇 마리 달라고 했는데 나는 왜 자꾸만 죽일까?”
“10마리 넘었는데 다 죽고 2마리 남았어!”
나는 답글을 보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안락사로 서서히 고통이 없게 죽이는 거 같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라고 했다.
나는 관상용 열대어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렇다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 집에 미니수족관이 있었다는 것과 그 안에 열대어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내가 한 번씩 수족관 청소를 한다는 걸 이럴 때 겨우 깨닫게 된다. 그 물고기들은 오직 아내의 관심 속에서만 생명을 연명하고 있었다. 관심을 주지 않으면 같이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아니다.
푸대접 음식
직장이 있는 원룸으로 돌아가는 일요일 저녁에 아내가 칡즙을 한 가방 싸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내가 건강에 좋은 거라며 어디서 사 왔는데 맛이 쓰다 보니 가족 모두 먹지 않아 베란다 한구석에 오랫동안 외면 당한 채 처박혀 있었던 식품이다. 지난 주말에는 아내가 사과를 큰 봉지에 가득 싸서 따라 나와서는 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먹지 않고 베란다에 쌓여 있던 사과임에 틀림이 없었다. 안 가져간다고 해도 몸에 좋은 거라 챙겨 먹어야 한다고 낑낑거리며 주차장까지 들고 와서는 차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
음식의 강제 처분이다. 원룸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무사귀환 전화 통화를 하며
“안 먹는 음식들 다 처분하니 홀가분하지?”라고 질문하니 ‘깔깔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내가 던져준 몸에 좋은 것들은 원룸에 와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싱크대 바닥 구석에 처박혀 있다.
푸대접받는 것들!
외면받는다는 게 꼭 값어치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수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