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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Sep 22. 2022

조셉 고든레빗의 발견
500일의 썸머 & 50/50

씨네아카이브 2. 반반의 확률 (배우특집 ep.2)

로맨스 영화에는 두 부류의 남자 주인공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를 지켜줄 남자 혹은 내가 지켜주고 싶은 남자. 조셉 고든레빗은 후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한국 팬들 사이에서 ‘조토끼’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조셉은 아역배우로 데뷔했는데 발행호에서 소개한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형 노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조셉 고든레빗이다. 데뷔 후 학업에 집중하던 시기를 제외하곤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필모그래피 역시 탄탄한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500일의 썸머>와 <50/50>를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2. 반반의 확률" 전문 읽기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마크 웹, 2009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건축가라는 꿈 대신 현실에 순응하며 카드 제작자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톰(조셉 고든레빗) 앞에 사장의 새로운 비서로 나타난 썸머(주이 디샤넬). 자신의 꿈은 현실과 타협해도 사랑만큼은 운명론을 굳게 믿는 톰은 썸머를 처음 본 순간 운명의 상대라 직감하고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운명적 사랑도 믿지 않고 구속당하기도 싫어하는 썸머로 인해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지내게 된다. 썸머를 운명의 반쪽이라 확신하는 톰과 운명론 회의론자 썸머의 사이는 어떻게 될까?


<500일의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남자 톰과 초현실주의자 썸머의 로맨티시즘과 리얼리티를 오가는 연애담을 그린 영화다. 개봉 후 지금까지 극사실주의 로맨스 영화의 표본으로 불리는 롬콤(rom-com)계의 연애 지침서라고나 할까. 영화는 운명적 사랑에 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가치관을 가진 남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그리고 남녀가 헤어진 후 488일째 되는 날에서부터 시간의 순서를 오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톰의 시선으로만 그려진다. 이건 톰과 썸머의 연애를 톰의 시점에서만 바라보며 관객들을 톰에게 감정 이입하도록 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된 플롯으로 그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썸머는 나쁜x인가 아닌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었는데 나도 썸머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던 기억이.. 그러나 최근 영화를 다시 보고 나니 썸머에게 무작정 비난의 화살을 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연애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건 서로 맞는 상대가 아니었을 뿐 누구의 탓도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500일의 썸머>는 톰과 썸머 중 누구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감상도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감상하는 시점에 사랑과 우연, 운명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감상평이 달라질 수 있는 입체적인 영화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이 남긴 한 줄 평("사랑은 꼭 그 사람일 필요가 없는 우연을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바꾸는 것")의 의미가 궁금하다면 꼭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마리's Clip

“오빠, 그 여자가 오빠 운명의 짝이었다는 생각은 그저 착각일 뿐이야.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것도 문제야. 다음에 그 여자 생각할 때 나쁜 것도 떠올려봐.”

톰을 자기 확신과 환상에서 현실로 꺼내주는 건 톰의 여동생 레이첼이다. 썸머를 운명의 상대로 확신했던 톰은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데 동생의 충고를 듣고서야 이별 직전의 순간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고작 몇 가지의 공통점으로 썸머를 운명의 상대라 여겼고, 또 고작 몇 가지의 차이점 때문에 관계가 끝났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지나친 기대를 품었다 혼자 쉽게 상처받는 편인데 톰에게 건넨 레이첼의 충고가 나에게 건네는 충고 같기도 했다.




<50/50>, 조나단 레빈, 2011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존 확률 절반의 희귀암 판정을 받는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50/50>은 사망률이 높다는 이유로 운전도 하지 않고, 술과 담배도 멀리하며 자신의 건강을 확신했던 아담(조셉 고든레빗)이 생존율 50%의 척추암 판정을 받은 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뜬금없는 시련에 억울할 틈도 없이 애인은 바람이 나고, 생존율 50% 면 카지노에서 대박 날 확률보다 높다는 초긍정주의자 절친 카일(세스 로건)은 병으로 여자를 꼬셔보라며 아담을 피곤하게 만든다. 잔잔한 파도뿐이던 아담의 삶에 닥친 풍파는 그의 삶을 반반의 확률 중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할까?


<50/50>은 개봉 직후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90%대의 높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다. 생존율 절반의 희귀암에 걸린 주인공을 내세우면서도 지나치게 무거운 신파로 그리지 않고 병마와 싸우는 주인공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렸는데 보고 나면 장르가 왜 코미디로 분류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실제 주인공인 윌 라이저는 TV 쇼 작가로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 <50/50>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친구 카일 역을 맡은 배우 세스 로건이 윌 라이저의 실제 친구로 병의 악화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시나리오 집필을 권유하고 위로도 해주었다고.


영화에 드라마틱한 감동은 없지만,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가족, 친구의 모습을 담담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서 더 와닿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깨달은 것 중 무미건조한 위로나 응원이 때로는 진심을 숨긴 실없는 농담보다 더 큰 상처가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병명도 모르면서 인사치레일 뿐인 위로를 건네던 아담의 직장동료들 모습과 사실은 누구보다 아담을 걱정하고 있지만 실없는 농담으로 투박하게 진심을 건네는 세스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50대 50 중 어느 쪽 확률로 결말이 그려졌다 해도 비극적인 소재를 밝고 유쾌하게 풀어낸 <50/50>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같다.


마리's Clip: 오프닝 시퀀스

<50/50>은 아담의 조깅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호에 걸려 제자리 뛰기를 하는 톰의 옆으로 조깅 중인 여성이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톰을 지나쳐 멈추지 않고 달려가지만 톰은 보행자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이어 달린다. 톰이 살아온 인생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수술을 앞두고 꾹꾹 눌러왔던 울분과 두려움을 토해내던 톰의 영화 후반부 장면과 대비되어 더 기억에 남았던 씬.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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