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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20. 2022

어른들을 위한 픽사의 동화
<라따뚜이> & <업>

씨네아카이브 4. 픽사 장편 특집

하룻밤 사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추워지기 시작하면 따뜻한 색감의 몽글몽글 마음을 간지럽히는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들이 생각난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영화로 로맨스도 좋지만 로맨스 특집은 잠시 미뤄두고, 대신 예술과 기술이 만나면 어떤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는지를 증명해내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잘 만들기로 유명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2편을 골라봤다. 역시나 발행인의 사심을 가득 담아서.


디즈니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잘 만든다면 픽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평론가들에게도 우수한 평을 받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지 않을까. 픽사의 작품은 사회 통념을 깨부수는 신선한 주제로 고정관념이나 클리셰를 부정하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의 결말이 그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주인공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이 픽사 작품만의 특징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평범하거나 때로는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라따뚜이>에서는 주인공이 요리사를 꿈꾸는 쥐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깨우치게 되는 건 인생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신 각자의 동화 속 결말은 스스로 완성할 수 있다. 픽사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이러한 요소들이 관객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용기를 주기에 픽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전문 제작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 아닐까.


"씨네아카이브 4.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전문 읽기



<라따뚜이(Rataouille)>, 브래드 버드, 2007


(출처: WALT DISNEY PICTURESPIXAR)

절대 미각에 빠른 손놀림까지 겸비한 레미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요리사 구스토를 보며 요리사의 꿈을 키운다. 문제가 있다면 레미는 생쥐라는 것. 어느 날 범람한 하수구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레미는 운명처럼 구스토의 레스토랑 앞에 떨어진다. 생쥐 신분으로 주방은 꿈도 꿀 수 없지만 향긋한 허브 향에 이끌려 요리혼이 불타오른 레미는 결국 금단의 영역이었던 주방에 몰래 들어가고, 그곳에서 요리에 재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견습생 링귀니를 마주친다. 그러나 해고 위기에 처했던 링귀니는 레미가 요리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보고 서로 의기투합하기로 한다. 과연 레니와 링귀니의 공생공사 프로젝트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쥐와 요리라는 상극의 소재를 이토록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건 픽사이기에 가능한 일! 영화에서 레미는 햄스터를 닮은 귀여운 쥐가 아니라 실제로 보면 기겁할 회색빛 시궁창 쥐다. 그런데 요리에 대한 열정을 쏟아내는 레미를 보고 있으면 구스토의 가르침이기도 한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Tout le monde peut cuisiner)’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요리와의 조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쥐임에도 불구하고 레미가 한 요리는 정말로 맛있을 것 같아 보이니까. 영화의 제목인 라따뚜이는 채소를 겹겹이 쌓아 만드는 프랑스 가정식 요리로 남프랑스 산 가지인 주키니와 호박, 양파, 토마토, 마늘, 당근 등 제철 야채를 겹겹이 쌓아 올리브 오일을 두른 후 프라이팬에서 뭉근히 익힌 후 뜨겁게 혹은 식혀서 차갑게 먹는다. 원래는 ‘야채를 대충 섞어 익힌 잡탕’이라는 의미의 요리로 맛없는 음식의 대명사로 통하며 천대받기도 했다고. 그러나 영화가 흥행을 거두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기 없던 요리를 단숨에 메뉴판 상단에 올릴 만큼 <라따뚜이>는 픽사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자 호평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개봉 당시 100만을 넘겼다. 영화는 세상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요리사 레미를 주인공으로 ‘세상은 과연 작은 이들의 재능에도 친절할 수 있는가?’를 따뜻하게 그려냈다. 모두에게 로망의 도시인 파리를 아름답게 담아낸 그래픽도 영화가 사랑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따뚜이>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동시에 요리 영화이기도 한데 프랑스 식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로 프랑스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파리로 날아가 일주일 정도 생활하며 지냈다고 한다.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배경을 그리고,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보면서. 직접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 보면서 요리사들의 섬세한 행동을 관찰한 후 캐릭터에 반영했고 이는 CG 작업을 통해 사실적으로 구현됐다. 파리가 배경이고 프랑스 요리를 다룬 영화이기도 한만큼 영어 더빙이 프랑스어식 억양으로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영어 더빙 버전보다 프랑스어 더빙 버전으로 감상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마리's Clip

“모두가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어디에서건 나올 수 있다. (Not everyone can become a great artist but a great artist can come from anywhere)" – 안톤 이고.

까칠하고 때로는 독선적으로 보이는 요리 비평가 안톤 이고가 레미가 만들어준 라따뚜이를 먹고 남긴 비평문의 한 구절. 픽사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잘 담겨있는 말이라 기억에 남았다. 대체로 세상은 새로운 것에 불친절하지만 사람들의 편견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레미가 그랬던 것처럼.




<업(UP)>, 피트 닥터, 2009


(출처: 네이버 영화)

칼은 아내와 사별 후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집에 집착하며 고약한 성질의 할아버지가 됐다. 함께 앙헬 폭포 보기를 소망했던 아내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칼은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달아 집을 통째로 남아메리카로 날려 버리는데 초대받지 않은 손님, 꼬마 탐험가 러셀이 예기치 않게 칼의 모험에 동행하게 된다. 세상 어울리지 않는 칼과 러셀이 함께하는 모험은 끝은 어떻게 될까?


<업>은 <라따뚜이>에 이어 픽사의 전성기를 이어간 작품이다. 2009년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고, 다음 해 영국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장편 애니메이션과 음악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에서는 최우수 작품상 후부로도 노미네이트 되었는데 이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이후 20년 만에 애니메이션이 노미네이트 된 것이라고 한다.

왼쪽이 칼 할아버지 집의 실제 배경이 된 집, 오른쪽이 영화 <업> 속에서 구현된 칼의 집 (출처: 구글)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인 칼 할아버지의 집은 실제 집을 배경으로 설정되었는데 이디스 메이스필드라는 할머니가 살던 집이 그 주인공으로 집을 허물고 대형 쇼핑몰을 지을 계획으로 건설사 책임자가 찾아와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했음에도 할머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추억이 서려 있는 집을 파는 것을 끝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책임자는 할머니 집을 그대로 두고 쇼핑몰 공사를 진행하자고 설득하고, 완공 후에도 할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업>은 실제 집과 집에 얽힌 이야기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셈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건설사 책임자에게 유산으로 집을 남겼고, 그가 집을 처분하면서 새로운 소유자를 거쳐 경매에 부쳐졌다 지금은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마을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3년부터는 할머니 이름을 딴 메이스필드 음악 축제도 열고 있다고.


픽사는 어른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제작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업>이야말로 이 수식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평생의 꿈을 포기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좋았던 시절의 기억에만 매몰되어 다가오는 미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한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현재의 지친 삶이 잠시 머물 쉼터가 될 수는 있지만,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기쁨과 추억을 발견하는 것까지 가로막아서는 안 될 테니까 말이다. <업>을 연출한 감독 피트 닥터의 말처럼 “모험 정신은 저 바깥에 있을 수도 있지만, 밖에 나가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만이 모험은 아니며, 지금 여기에서 매일 펼쳐지는 우리의 일상 또한 모험”이니까.


마리's Clip: <업>의 오프닝 시퀀스
(출처: YouTube)

<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5분 남짓한 오프닝 시퀀스를 고를 것 같다. 픽사가 남긴 전설의 오프닝 시퀀스이자 관객들에게 길이길이 회자되는 바로 그 장면. 이 장면으로 픽사는 단순히 그래픽 기술만 뛰어난 제작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마술인 ‘시간의 압축’을 가장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뭉클함을 선사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고백하건대 나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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