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 북유럽 영화의 매력 (스웨덴 영화 편)
북유럽 영화는 아직까지 조금 생소한 영역지만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은은하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첫 북유럽 영화는 EBS에서 본 다큐멘터리였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동네 노인 배구단에서 활동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였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잔잔한 유머 코드도 있고 결말이 궁금해 채널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봤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영화를 통해 북유럽 영화에 제대로 입문하게 됐다. 영화의 본질은 예술이지만 영화 감상에 취미가 없다면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나 액션 처럼 쉬운 장르부터 천천히 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에서부터 조금씩 취향을 넓혀 나갔고, 지금도 넓혀가는 중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할 스웨덴 영화 입문작 2편은 볼수록 매력적인 스웨덴 할배들의 일탈을 그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오베라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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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플렉스 할그렌, 2014년 개봉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제목 그대로 100세 생일날 요양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이 우연히 돈 가방을 손에 넣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알란이 과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2차 대전 전후의 근현대사가 담겨있다. 주인공 알란 칼슨은 100세 생일날 요양원 창문을 타 넘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다. 직원들이 생일 케이크에 100개나 되는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방문을 열었는데 알란은 이미 창문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돈 가방을 손에 넣게 되고 여러 사람과 조우하며 알란에게는 유쾌한 모험 길이지만 돈 가방을 쫓는 갱단들에게는 추격 길이 될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는 기자와 PD로 일하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등단했는데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만 100만 부, 전 세계적으로 500만 부 이상 팔리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2013년 영화화되었다. 영화와 소설의 큰 줄기는 같지만,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알란의 진취적인 면모보다 우연과 운명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원작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관객들이 단시간에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우연과 과장된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코믹함 뒤에 가려진 첨예한 이념 갈등과 과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의도치 않게 중심에 있던 알란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는 돈 가방을 놓고 벌어지는 소동극과 알란의 과거사 이야기 투트랙 형태로 진행되는데 돈 가방은 일종의 맥거핀(MacGuffin,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이고 영화의 주제는 그의 과거사에 있다. 과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알란이 있고,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념 갈등 속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판단을 거부하는 인물이 알란이다. 알란의 관심은 맛있는 음식과 술, 신나는 음악과 춤뿐. 모든 것이 이념에 의해 움직이던 냉전 시대에 정치적 견해는 배제하고 그때그때 본인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알란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매사를 정치적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가장 중요한 ‘인간’을 배제하는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알란의 모습은 이념 갈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이념에만 목매는 사람들의 태도를 에둘러 비판하는 셈.
영화 속 알란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많이 과장되긴 했지만) 근현대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영화 감상과 역사 공부를 동시에 하는 느낌이랄까. 근현대사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서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던 부분을 공부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준비하면서 관련 기사를 읽고 다시 보니 소설도 영화도 마냥 가볍기만 한 작품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서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영화나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읽어보고 감상하길 추천한다.
마리's Clip
“너무 걱정하지 마. 괜히 고민해 봤자 도움 안 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거고 세상은 살아가게 돼 있어.”
알란의 엄마가 알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자 알란의 삶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마음에 새기려고 하지만 예민한 성격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말이라 더 기억에 남았던 대사.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 역시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하게 된다면 영화 속 대사를 떠올리려 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걱정한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 하네스 홀름, 2016년 개봉
그의 DNA에는 융통성이란 것이 존재할까 싶을 만큼 고집불통인 할아버지 오베.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당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아내 소냐까지 세상을 떠난 후, 그에게 남은 삶의 목적은 소냐를 따라가는 것뿐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오베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만 마지막 순간마다 새로 이사 온 파르바네 가족부터 볼보를 탄 순간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루네와 그의 아내, 죽은 소냐의 제자까지 이웃들이 거침없이 끼어들며 방해한다. 과연 까칠한 할아버지 오베는 자신의 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까?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동명 소설이 원작.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5년에 영화화되어 제89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12월에는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미국 버전 <오토라는 남자 (A Man Called Otto)>가 개봉 예정. (영화관으로 달려갈 준비가 필요하다!)
소냐의 죽음 이후로 오베의 관심은 오로지 소냐를 뒤따라가는 일뿐이지만 오베의 주변 사람들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그의 삶에 끼어든다. 그들이 귀찮고 짜증 나지만 아이러니한 건 이웃들의 부름에 투덜거리면서도 응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계획이 실패할 때마다 오베는 소냐의 무덤에 찾아가 꽃을 놓아두며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된 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힘들어!”
사실 오베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고로 죽고,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세상은 결코 그에게 다정하지 않다. 누가 다가오는 것도 싫고, 다가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오베에게 무뚝뚝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다정함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온 사람이 소냐다. 어쩌면 소냐는 오베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냐의 죽음과 함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오베의 마음의 문이 영원히 닫혀버린 거지. 영화 속 오베와 소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난번에 소개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업>의 칼과 엘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베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는 성격의 인물로 그려진다. 매일 아침 마을을 순찰하고, 만일에 사고에 대비해야만 하는, 자신의 규칙에 집착하는 그의 성격은 타고난 것보다 지나온 삶과 환경이 큰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은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 한다. 오베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베가 안전한 환경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건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모두 잃어보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오베의 고집스럽고 까탈스러운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와 오베라는 인물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데에는 ‘그가 가진 고집과 외로움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오베의 고집 뒤에 감춰진 아픔과 외로움을 알아보았기에 소설도 영화도 많은 사랑을 받은 걸지도.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을 겪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결코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닥쳤을까 원망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기보다 기꺼이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의 삶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오베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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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도움 없이 혼자 살 수는 없어요. 아무도 혼자 살 수는 없다고요.” - 파르바네
벽을 세워두고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는 오베에게 딸처럼 살갑게 대했던 이웃 파르바네가 날린 일침과 같은 한 마디. 그리고 오베가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던 한마디이기도 하다. 상처로 남은 기억이나 경험 때문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도움을 주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고 느껴본 적이 있다. 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로 돌아가는 곳이기에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나 상처받아 본 사람들에게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파르바네의 말처럼 세상은 결코 혼자 섬처럼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봐 주고, 기꺼이 마음을 나누려는 태도만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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