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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17. 2022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유브 갓 메일>

씨네아카이브 6. 20세기 로맨스 영화

6번째 아카이빙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로맨스! 그냥 로맨스 아니고 20세기 로맨스다. 20세기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노라 에프론! 세 번째 아카이빙에서 소개했던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감독도 그녀였다. 2016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회자되고 로맨스 장르를 즐겨보지 않는 이들도 제목은 들어본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영화 평론가 김혜리 기자님은 "세계의 영화사를 정리할 때 노라는 언급되지 않겠지만 미국인들이나 우리 개개인이 소장하고 싶은 영화를 꼽을 때는 그녀의 영화가 선사한 추억 때문에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 했는데 그녀의 로맨스 영화에서는 유쾌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기에 많은 관객이 그녀와 그녀의 작품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아닐까. 나도 같은 이유로 그녀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중 지금도 다시 찾아보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유브 갓 메일>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6. 20세기 로맨스" 전문 읽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롭 라이너, 1989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대학 졸업 후 뉴욕 행 차를 나눠 타게 된 해리와 샐리.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명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서로를 별종이라 생각하며 뉴욕에 도착한 후 짧은 인사만 나누고 헤어진다. 몇 년 후,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면서 또 한 번 재회하지만 역시 짧은 대화만 나눈 채 헤어진다. 샐리는 오랫동안 만나 온 연인과 이별하고 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후 서점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뒤에야 둘은 친구가 된다. 남사친과 여사친으로 우정을 이어가던 두 사람. 헤어졌던 연인의 결혼 소식에 슬퍼하는 샐리를 해리가 위로하다 뜻밖의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둘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는데... 과연 해리와 샐리는 친구일까, 연인일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우연히 알게 된 사이인 해리와 샐리가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며 밀고 당기는 썸을 지속하다 결국 연인이 된다는 전형적인 롬콤 영화다. 뻔한 스토리지만 주연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 훌륭한 각본과 연출, 가을에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뉴욕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20세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하면 떠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글을 준비하면서 벌써 3번째 다시 본,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 TOP5 안에 들어간다.


오은영 박사님이 깔끔하게 정리한 남사친과 여사친에 대한 정의를 들어 본 관객이라면 영화 속에서 해리와 샐리가 친구가 된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결말은 예상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해리가 샐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 역시 오은영 박사님이 정의 내린 남사친과 여사친에 대한 결론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친구에서 연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이기에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능글맞고 재수 없는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해리를 연기한 빌리 크리스탈과 매사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조금 어리숙한 사랑스러운 샐리를 연기한 맥 라이언, 두 사람의 연기가 진부한 소재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바꿔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의상과 소품 등 곳곳에서 20세기 아메리칸 레트로 무드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오랜만에 20세기 로맨스 감성에 젖어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아직 로맨스 영화에 입문하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마리's Clip

Harry: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싫어했어요.”
Sally: “서로가 아니라 내가 싫어했죠. 두 번째 만났을 땐 날 기억도 못 했잖아!”
Harry: “아니야, 기억했어. 세 번째 만났을 때 친구가 됐어요.”
Sally: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어요.”
Harry: “그러다가.”
Sally: “사랑에 빠졌죠.”

영화 중간중간 노부부의 인터뷰 장면이 등장하는데 서로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해리와 샐리다. 돌고 돌아 부부의 연을 맺게 된 해리와 샐리. 두 사람의 시작과 끝이자 영화의 모든 줄거리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한 장면이라 생각해 기억 남는 씬이다.




<유브 갓 메일>, 노라 에프론, 1998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조와 캐슬린은 인터넷으로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다. NY152와 SHOPGIRL이라는 ID로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과 취미를 공유하고 뉴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조와 캐슬린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캐슬린은 동네 모퉁이에 있는 아동 서점의 주인이고, 조는 맨해튼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으로 새로운 체인점을 캐슬린의 서점 근처에 오픈할 계획 중이다. 폭스 북스는 박리다매와 편리한 서비스로 캐슬린의 서점을 위협하고, 조와 캐슬린은 서로 펜팔 친구인지도 모른 채 앙숙이 되고,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서점이 문 닫을 처지가 되자 캐슬린은 NY152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유브 갓 메일>은 노라 에프론이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작품이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췄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다시 한번 재회해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결말 등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두 주연배우의 케미와 뉴욕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맨스 영화로는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고전 <모퉁이 가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리메이크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직장동료가 알고 보니 펜팔을 주고받는 설정이었다면, <유브 갓 메일>에서는 서로 다른 서점을 경영하며 원수가 된 두 남녀가 호감을 갖고 메일을 주고받았던 사이로 바뀌었다. 원작은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원작의 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역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대가로 꼽힌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과 재치 있는 대사 등은 ‘루비치 터치’로 불리며 이후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영화 속에서 캐슬린이 물려받아 운영하는 서점 ‘The Shop Around Corner’는 원작의 영화 제목을 오마주 한 것이기도 하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체 메일을 주고받던 두 남녀가 알고 보니 으르렁대던 원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어진다는 스토리 라인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에서 대형 서점이 동네 소형 책방을 문 닫게 만든다는 설정이나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스타벅스 등의 요소는 미국의 거대 자본이 소상공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습을 생각나게 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화두가 될만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원작이나 감독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도 <유브 갓 메일>은 아쉬운 평이 두드러지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영화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관객들이 두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해 마음을 몽글몽글 설레게 만드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쩌면 내가 금사빠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마리's Clip

"오늘은 NY152가 무슨 말을 할까? 난 컴퓨터를 켜고, 전원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접속을 한 후 이 일곱 자를 들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여요. ‘편지가 왔습니다 (You’ve got mail)!’ 뉴욕 거리의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고 들리는 것은 오직 내 심장 박동 소리뿐.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I have mail from you)." - 캐서린 (유브 갓 베일)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캐서린의 내레이션. 나는 고등학생 때 한 아이돌 덕질을 하며 팬카페에서 만난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와 메일을 주고받는 펜팔 친구가 된 적이 있는데 그 친구에게 시험 망친 이야기, 부모님에게 혼난 이야기, 취미 등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하고 나는 실패해서 메일로 콘서트 실황을 전해 듣기도 했었지...)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펜팔이 주는 묘한 셀렘을 느꼈었는데 그때의 감정을 다시 되새겨보게 된 장면이라 꼽았다. 해당 내레이션의 배경음악으로 The Cranberries의 ‘Dreams’ 이 흘러나오는데 장면과 곡이 정말 잘 어울렸다. 참고로 해당 곡은 <중경삼림>의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몽중인’의 원곡이기도 한데 원곡도 번안곡도 명곡이라 찾아서 들어보시길!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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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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