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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Dec 22. 2022

연말에는 특선 영화
어바웃 어 보이 & 어바웃 타임

씨네아카이브 8. 연말이니까요.

12월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동요하게 하는 달 같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아쉬움,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와 함께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로 만감이 교차하니까. 무엇보다 고유의 명절은 아니지만, 못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크리스마스도 있고. 거리의 상점, 라디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 캐럴이 들리기 시작하면 연말을 실감하게 되면서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연말 전용 영화들이 떠오른다. 신기한 건, 매년 보는 영화인데 볼 때마다 재미있다는 거다. 연말이라는 단어와 함께 머릿속에서 떠오른 몇 편의 영화 중 <어바웃 어 보이>와 <어바웃 타임>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8. 연말이니까요" 전문 읽기



<어바웃 어 보이>, 폴 웨이츠 & 크리스 웨이츠, 2002


(출처: 네이버 영화)

물려받은 유산으로 백수 생활을 즐기는 윌은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다.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고, 여자와 즐기는 것 이상의 관계는 원치 않는 윌은 우연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야말로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딱 맞는 상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싱글맘과의 만남을 위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에 싱글대디인척 참석한 윌은 그곳에서 왕따 소년 마커스를 만나게 되고, 예기치 않게 마커스의 보호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마커스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커스를 통해 본인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섬처럼 홀로 있을 때 가장 완전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윌과 언제나 여분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커스. 두 보이의 성장 스토리의 끝은 어떻게 될까?

(출처: 네이버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닉 혼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러브 액츄얼리>,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로맨스 영화 명가로 소문난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하고, 웨이츠 형제가 연출을 맡아 제75회 아카데미 각색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휴 그랜트가 몸만 자란 어른 ‘윌’을, 정변의 아이콘 니콜라스 홀트가 ‘마커스’ 역을 맡았는데 귀염뽀작한 니콜라스 홀트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영화다. 당시 만 11세였던 니콜라스 홀트는 귀여운 얼굴로 천진난만함과 어른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며 호평받았는데 이후 훈훈한 외모와 함께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드라마 <스킨스>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찍은 작품들은 관객들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도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어바웃 어 보이>이기도 함.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인간은 섬’이라 생각하는 윌과 ‘우리의 삶에는 여분의 인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커스의 내레이션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져본 적도, 가정을 꾸려본 적도 없는 윌은 사람은 모두 섬이며 자신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꽤 멋진 섬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이 결혼을 권할 때마다 섬은 본디 홀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왜 뭉치지 못해 안달이냐 생각하며. 그의 인생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반대로 마커스는 군도(무리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섬들)가 필요하다. 이혼한 엄마와 둘 뿐인 삶은 충분하지 않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가 자기만 남겨두고 떠나버릴까 늘 두렵다. 그리고 마커스의 걱정이 현실에서 일어나자 정말로 외딴섬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신과 엄마를 위해서라도 백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우연히 만났던 윌을 떠올린다. 엄마와 윌을 이어주고 싶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자 마커스는 학교가 끝나고 매일 윌의 집에 찾아간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윌의 섬에 다리를 놓기 시작한 거다. 귀찮기만 했던 마커스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과 아이가 차마 털어놓지 못한 두려움까지 알게 되자 윌은 측은한 마음에 목적 없이 순수하게 호의를 베풀고, 마커스가 좋아하는 모습에 내심 뿌듯함도 느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마커스를 기다리게 된다.


외딴섬 같은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즐겼던 윌과 달리 마커스는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지만, 학교에서도 외딴섬이고 집에서도 외딴섬이 될까 두렵다. 마커스가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은 윌과 함께 할 때. 말로는 여분의 사람이 필요해서라지만 마커스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어른에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항상 윌을 찾았던 걸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꽉 채워져 보이는 윌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처럼 보이는 비어있는 구멍 같다. 그리고 마커스를 통해 텅 빈 구멍을 직시하게 되고, 그 속을 사람들로 채우는 법을 배운다. 영화에서는 윌을 묘사할 때 ‘blank, nothing, nobody’ 같은 단어들로 표현하며 그의 삶이 비어 있음을 암시한다. 윌이 도시의 군중 틈에서 홀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인물의 고립을 표현하며 윌의 삶이 텅 빈 구멍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는 무위도식하며 인생을 소비하기 급급했던 싱글 남자와 보살핌이 필요한 열한 살 소년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섬이지만 바다 밑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말한다. 나는 인간은 섬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타인과 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줄 아는 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섬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바다 아래 섬과 섬이 굳건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리's Clip

“모든 사람은 섬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부의 섬들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섬들은 바다 밑에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윌처럼 인간은 섬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때로는 지나치게 염세적인 인간이 되어 ‘역시 인생은 혼자야!’를 외칠 때도 있지만, 인간은 무리생활을 통해 진화해왔고 미우나 고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윌의 마지막 대사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어바웃 타임>, 리차드 커티슨, 2013


(출처: 네이버 영화)

모태 솔로인 팀은 성인이 되는 날, 아버지로부터 가문 대대로 남자들에게 전해오는 시간여행 능력에 대해 듣게 된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으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다거나 억만장자가 될 수는 없지만, 모태 솔로는 탈출할 수 있으리! 꿈을 위해 런던으로 간 팀은 우연히 만난 사랑스러운 여인 메리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간여행 능력을 발휘해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낸다. 하지만 메리와의 사랑이 완벽해질수록 팀을 둘러싼 주변은 미묘하게 엇갈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과연 팀은 완벽한 사랑을 이루고, 주변 사람들도 지켜낼 수 있을까?

(출처: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은 국내에서 2013년 12월에 개봉, 연말 동안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식상하다 해도 연말과 로맨스 조합은 진리임을 증명한 것이 아닐런지. 연출은 리차드 커티스 감독이 맡았는데 개봉 이후 수많은 남성에게 고백 플랜카드를 쓰게 만들었던 <러브 액츄얼리>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어딘지 모르게 찌질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팀을 연기한 돔놀 글리슨은 <어바웃 타임>을 통해 휴 그랜트의 뒤를 이을 배우로 꼽히기도 했다고. 하지만 팀보다 더 눈길이 가는 인물은 메리 역을 맡은 로맨스 장인 레이첼 맥아덤스 였다. 감독은 “출연한 영화마다 항상 충만한 사랑과 편안한 감정으로 관객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배우”라 평했다는데 정말로 레이첼 맥아덤스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인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사랑스러운 미소지만.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시간여행을 매개로 주인공 팀의 삶의 여정을 통해 현재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주어진 길이는 다르겠지만)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관건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인가다. 영화는 SF적인 소재를 통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시간을 맞이하는 방식과 관련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팀의 아버지가 찾은 행복의 비밀 공식이기도 하다. 공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똑같은 하루를 두 번 살아보는 것! 첫날에는 짜증 나고 힘든 일투성이지만 두 번째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주변을 살필 여유를 찾고, 바쁜 일상에 가려져 있던 찰나의 행복과 시간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는 팀에게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뿐”이란 조언을 남기는데 감독이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나중에 추억할 지난날을 조금 더 가치 있게 보내길 바란다는 조언.


<어바웃 타임>이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보다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주인공이 시간여행 능력을 아주 사소한 곳에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과거의 어느 시점을 생각하기만 하면 이뤄지는 초간편 시간여행을 팀은 사랑을 쟁취하는데, 팀의 아버지는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는 데에만 사용한다. (나라면 대다수 속물처럼 급등할 주식을 왕창 매수한다거나 다음 주 로또 번호 알아두기 같은 곳에 썼을 테지만...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통해 극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장치로만 사용했다는 점이 다른 시간여행 영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 이자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재치 있게 만들어 준 요소였다. 거기에 특유의 영국식 유머를 곁들여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건 덤이고.


<어바웃 타임> 속 시간 여행에는 한 가지 규칙이 존재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 이것도 현재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한 설정의 일부이자 팀이 아버지의 교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더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도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누구도 영원불멸의 삶을 누리진 못하니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시간과 죽음이기에 행복한 삶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어쩌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모든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팀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콘월 해변 산책 장면의 여운이 짙게 남는 영화였다.


마리's Clip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인생을 비유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 있다. 마라톤이나 여행처럼. 나는 여행에 비유하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행처럼, 인생 역시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만끽하다 보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일상의 사소한 것들도 지난날의 추억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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