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10.일상의 미학
나의 거시적 삶의 목표는 ‘소확행’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소확행’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기도 하다. 평범함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할 줄 아는, 가까이에 있어 망각하기 쉬운 일상 속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발견할 줄 아는 것에서부터 내 삶의 의미와 행복도 찾을 수 있다. 소개할 영화는 이런 일상의 미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 2편으로 골랐다.
<패터슨>, 짐 자무쉬, 2016년 개봉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소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주일 동안의 단조로운 삶을 보여준다. 평일에는 오전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기상해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고 걸어서 출근하고, 출근길에는 시상을 떠올리고 직장에 도착해 운전대 앞에서 떠올린 시구들을 노트에 기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패터슨의 구석구석을 관망하며 지나치고, 승객들이 나누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점심에는 아내 로라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패터슨시에 자리한 폭포를 보며 떠오른 시상들을 노트에 적어둔다. 퇴근 후에는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뒤 밤에는 반려견 마빈과 산책을 나서고, 근처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두고 술집 주인이나 지인과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패터슨의 일상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그려지지만, 영화는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뜻밖의 발견, 사소한 변화, 소소한 사건이 어떻게 시상으로 전환되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 시놉시스만 읽었을 때는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 없이 흘러가는 정적인 영화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지루하면 어쩌나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패터슨>은 짐 자무시 감독이 연출하고 애덤 드라이버가 주연을 맡아 제6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 평단과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아쉽게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반려견 마빈을 연기한 불독 넬리가 ‘팜 도그상 (황금 종려상인 Parlme d’Or의 프랑스어 발음에서 따온 상으로 매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 중 뛰어난 연기를 펼친 동물에게 수여)’을 받았다. 넬리는 정식으로 연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음에도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두 달 뒤 암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영화는 짐 자무시 감독이 존경하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고향 패터슨을 여행하면서 영감을 얻어 그의 연작 서시 「패터슨」에 착안해서 만들어졌다. 영화의 스토리를 시구에서 가져온 것은 아니고, 영화를 통해 평범한 삶 속에서 어떻게 시가 만들어지는 지를 보여준다.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 패터슨이 쓴 시 여러 편이 내레이션으로 소개되는데 모두 영화를 위해 창작한 것으로 감독이 직접 쓰거나,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미국 현대 시인 론 패짓이 쓴 것이다.
짐 자무시 감독은 80년대 ‘뉴욕 인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학창 시절 시인을 꿈꿨는데,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영화에 빠지게 되어 감독이 되었다. 짐 자무시 감독은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많이 하는 감독 중 하나로 특히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작품을 감상한 것은 <패터슨>이 처음이었는데 그의 영화는 어려워서 보기 힘들 것이란 편견과 달리 재밌었다. 짐 자무시의 작품을 감상해 보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던 분들이 있다면 <패터슨>을 입문작으로 추천하고 싶을 만큼! 감독은 “무엇인가 반복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변주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패터슨>을 구상하면서도 영화의 구조를 일상의 메타포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간결하게 그려내 “자극적인 소재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에 대한 해독제”와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다고. 정말 신기하게도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를 감상 동안 평온하게 흘러가는 패터슨의 일상을 보며 복잡했던 머릿속을 잠시나마 비워낼 수 있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에는 ‘반복’의 개념이 두드러진다.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 길거리와 바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쌍둥이들, 매일 같은 노선을 도는 버스 등 곳곳에 반복의 메타포가 등장한다. 패터슨의 일과 역시 아침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버스를 운전하고, 틈틈이 시를 짓고, 바에 들러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반복이다. 영화에서 변화하는 것은 패터슨의 아내 로라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꿈도 자주 바뀌고, 즉흥적인 성격이라 집 안 인테리어를 끊임없이 바꾸기도 한다. 규칙적이고 침착한 패터슨과 달리 로라는 역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일절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패턴을 이해하고 응원하는데 나는 이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사랑하면 닮는다는데 패터슨과 로라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닮은 구석은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게다가 정반대인 두 사람이 어째서 닮은 사람들보다 더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패터슨과 로라는 상반되는 기질을 지녔지만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했고, 각자의 방식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며,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줄 알기에 서로의 차이도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부부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패터슨과 로라의 또 다른 점은 패터슨은 아날로그형, 로라는 디지털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패터슨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침에도 휴대폰 알람 없이 일정한 시간에 눈을 뜨고,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노트를 대신하는 시대에 펜으로 글을 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휴대폰이 없어 불편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아날로그적 삶 덕분에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일궈내는 패터슨의 모습은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김과 동시에 (힘들겠지만) 그의 태도를 닮고 싶기도 했다.
<패터슨>에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소재나 극적인 전개, 화려한 영상미는 없다. 패터슨이 시상을 떠올리는 순간조차 그저 일상의 한 부분으로 그려지며 영화는 자신만의 패턴으로 반복적인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지만 그 속에서도 시상과 예술은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사이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있는데 그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고 이야기하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다른 차이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소울>, 피트 닥터, 2020년 개봉
재즈 연주자를 꿈꾸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조 가드너는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된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지구로 가길 거부하는 영혼 ‘22’의 멘토가 되는데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야만 하는 조와 지구로 가고 싶지 않은 22의 멘토링은 어떻게 될까?
<소울>은 <업>을 비롯해 <몬스터 주식회사>,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의 스토리는 23년 전에 구상해 뒀는데,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들의 성격이 이미 형성되어 있고 그건 어디서 비롯됐을까를 생각하다 <소울>의 스토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소울>은 픽사 영화 최초로 주인공이 흑인인 영화로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화와 정서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내/외부에 자문 위원을 두는 등 많은 공을 들였다. 영화는 제93회 아카데미와 제78회 골든 글로브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음악상을 받았고, ‘삶의 기쁨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라는 평과 함께 공개 이후 극찬받으며 국내에서는 코로나 시기에 개봉했음에도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잘 만들기로 소문난 픽사답게 ‘별것 없는 인생이라 느껴질지라도 매 순간 소중한 삶 그 자체를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픽사가 픽사한’ 작품 목록을 하나 더 추가했다.
<소울>은 픽사의 역사를 기록한 일대기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지구로 가길 거부하는 영혼 22의 이름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22라는 숫자를 이름에 붙인 건, 캐릭터가 픽사의 욕망・고민・정체성을 반영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픽사가 만든 장편 영화가 총 22편이라 붙여진 의도적인 작명이기 때문이다. 픽사는 역대 작품들에도 이스터에그 (Easter Egg, 부활절 달걀이란 뜻으로 영화 속 숨겨진 메시지를 의미)를 숨겨뒀었는데 <소울>에도 전작들의 이스터에그가 곳곳에 숨겨져 있으니 영화를 보며 에스터에그를 찾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영화 속 배경인 ‘태어나기 전 세상’과 태어나길 기다리는 영혼들의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실제로 존재한다면 <소울> 속 모습과 같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세심하게 구현되었다. ‘태어나기 전 세상’은 무해하고 편안하지만 지구가 아니란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뒀고,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마다 영혼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연구하여 대부분 ‘수증기 같은’ 비물리적 표현이 쓰인다는 것에 착안, 영혼에도 표정이 보이게 하도록 기체를 모티브로 삼아 인간의 실루엣을 단순화해 영혼들의 모습을 완성했다고. 영혼을 지구로 인도하는 ‘카운슬러’는 인간이나 영혼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구분하기 위해 피카소의 조각이나 스칸디나비아의 현대 조각들을 참고하여 반짝거리는 선으로 표현했는데 다른 캐릭터들보다 더 구현하기 힘든 작업이었다고 하니 픽사는 <소울>을 통해 “예술은 기술에 도전하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라는 자신들의 모토를 다시 한번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디즈니 못지않은 OST 장인답게 음악 역시 <소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트렌트 레즈너의 경쾌하면서도 톡톡 튀는 전자음들은 영혼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낯선 환경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했고, 지구에서 일상을 표현한 존 바티스트의 재즈곡들은 영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주인공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존 바티스트의 손을 모델로 하여,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찍은 뒤, 애니메이터들이 영상을 참고하여 조의 손가락을 표현했다고. (역시, 집요하고 집요한 픽사!)
<소울>은 얼핏 보면 <인사이드 아웃>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의 감정을 탐구했다면 <소울>은 성격을 탐구하니까.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가 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내면을 들여다봤다면, <소울>은 세상에 ‘나’라는 사람의 자리와 태어난 목적을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설명한다.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고 나의 열정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고민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안을 제시하는 영화인 셈이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삶의 목적이 뚜렷하다.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이다. 목적 없는(pointless)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목표지향적인 인물이지만, 영혼이 되어 돌아본 자신의 삶은 평범함 말고는 기록할 만한 것이 없었다. 반대로 지구에 가길 거부하는 22는 모두가 고민하는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해 지구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열쇠인 불꽃을 받지 못하고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장기간 머물고 있다. 그곳에서는 이미 태어났다 돌아온 영혼들이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의 멘토링을 진행하는 ‘유 세미나’가 개최되는데 장기 거주자인 22는 링컨, 마더 테레사, 코페르니쿠스, 무하마드 알리 등 역사적인 인물들과 멘토링을 하지만 매번 그들을 굴복(?)시킬 만큼 염세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22가 조에게 흥미를 느끼고 조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위인들을 제쳐두고 조에게 흥미를 느낀 것은 조가 다른 멘토들과 달리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토록 평범한 인간이 왜 간절하게 지구로 돌아가길 원하는가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다.
22가 지구로 가기 싫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삶에 관심도 없고 목표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과연 ‘삶이 죽음을 감내할 만큼 태어날 가치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며 누구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아예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생각하고 지구로 가는 것을 거부한다. 영화는 22가 조의 평범함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리며, 삶이란 반드시 의미 있고 위인들처럼 훌륭해져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동시에 목적 지향적인 조의 모습과 떨어지는 낙엽이나 피자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도 즐거워하는 22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이며, 목적으로서의 꿈이 아닌 꿈을 삶의 한 지점이자 지나쳐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소울>은 조 가드너와 22를 통해 우리 삶에서 목적이 중요한가 과정이 중요한가를 물으며, 목표만 쫓다 놓쳐 버렸을지도 모를 일상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길 권하는 철학적인 영화였다. (역시, 픽사가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답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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